[고덴의 영화읽기 33] <나의 작은 시인에게>
애나는 아름답다
나에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애나(Anna)’라는 제목의 시다. 이 시는 누구의 시일까? 양자택일 문제를 내겠다. 유치원 교사와 그녀의 제자인 다섯 살 꼬마 지미. 누구일까.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한 영민한 독자들은 당연히 다섯 살 꼬마 지미일 것이라 예측했을 것이다. 정답이다. 하지만 방금과 같은 객관식이 아니라 ‘이 시를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 같은가?’란 주관식 질문이 주어졌다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치원을 다니는 꼬마의 작품이라 대답하진 못 했을 것이다.
시작(詩作)
유치원 교사 리사는 시를 잘 쓰고파 시간을 내어 시 쓰기 수업에 나간다. 시를 좋아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썩 소질이 뛰어나진 않나보다.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 시작(詩作)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음에도 그녀는 결코 시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다시 공간은 생업의 현장. 두 10대의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아이들의 유치원 선생님인 리사는 어느 날 우연히 한 꼬마의 혼잣말을 우연히 듣게 된다. 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과연 다섯 살짜리 꼬마의 머리 속에서 어떻게 저런 구절이 나올 수 있을지 의심하고 또 귀를 의심했다. 그 구절들이 바로 서두에 소개된 ‘애나’라는 시다.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를 발견한 리사는 천재 꼬마 시인 지미의 시작(詩作) 능력을 알아보게 되었다.
비록 스스로가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를 알아보는 눈 정도는 가진 범재이긴 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 날부터 지미가 내뱉는 말들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꼬마 천재의 혼잣말들을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시 쓰기 수업에서 읊고는 했다. 그녀의 촉은 정확했다. 수업에서 그녀의 위상은 달라졌다. 모두들 이제 그녀의 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작(始作)
점차 리사는 대담해졌다. 계속해서 지미의 시를 훔쳐가기 시작(始作)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아주 어린 제자를 질투하기에 이르렀다. 복잡하다. 마냥 질투심으로 치부하기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여러 모습으로 해석이 된다. 때론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으로도 읽히고 재능을 알아주지 못하는 소년의 가족을 설득하는 면에서는 진정한 멘토의 모습도 보인다.
결국 그녀는 용단을 내린다. 자신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년의 능력을 끄집어내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는 그 선택을 과잉된 자기 욕망의 발현이자 아동학대로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는,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순간으로 해석할 것이다. 그녀는 과연 미래의 예술가의 탄생과 시작(始作)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것인가?
시작의 끝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읽었다시피 40대 여성과 5살 남자 아이의 관계만으로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힘이 있다. 둘의 관계는 사제지간이기도 하며 한 편으론 모자지간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론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르가 곁에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근래 나온 영화 중 이렇게도 입체적이면서 신선한 관계의 캐릭터 설정이 있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2014년에 나온 이스라엘 작품 <시인 요아브>의 리메이크 작이다. 원안이 탄탄했기에 리메이크작 역시 평단으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고 있다. 복잡다단한 심리를 가진 주인공 리사를 표현한 매기 질렌홀의 연기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의 심리를 잘 구축해낸 감독 사라 코랑겔로에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제34회 선댄스 영화제는 그녀에게 감독상을 건네주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줬다.
여러 개의 물음표를 남겼기에 독자들은 지금쯤 결말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을지 모르겠으나 당연히 영화의 결말을 밝힐 의도는 없다. 과연 새로운 시를 만들어내고(詩作),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내려는(始作) 리사의 결정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그 시작(詩作,始作)의 끝을 확인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