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덴의 영화읽기 32] 한국 영화 생태계를 위협하는 스크린 독과점
<신과 함께>가 17일 오전을 기점으로 누적 관객 수 1,303만 9천 668명을 기록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 5위로 올랐다. 3위의 <아바타>를 제외하면 국내 작품 중에서는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신과 함께>의 인기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신과 함께>가 어떤 다른 천만 영화를 순위에서 발밑으로 끌어내릴지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오히려 궁금증의 방향은 영화를 넘어 근본적으로 영화계 전반과 우리 사회로 향한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과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나라 인구의 5분의 1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영화를 보는 현상은 정상일까?
다시 불거지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
거대한 질문이 버겁다면 좀 더 작은 질문. 어떻게 <신과 함께>는 단기간에 천만 명 이상을 동원했을까? 원작의 인기,호화 캐스팅으로 높아진 수요에 비례한 공급의 결과일까, 아니면 반대로 과잉공급이 우선해 제한된 수요를 창출한 것일까. 결론적으로는 둘 다 맞는 분석이 된다. 하나의 경제적 현상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지 않나. 하지만 경중은 따질 수 있다.
<신과 함께>의 경우는 후자에 훨씬 더 큰 무게를 둬야 한다. 더 격하게 표현하자면 거대자본이 다른 영화를 볼 수 있는 관객들의 자유를 앗아 갔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입장은 비단 <신과 함께>가 아니라 역대 천만 이상을 동원한 모든 영화들에게도 도달한다. 많지 않은 스크린 수로 출발해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천만을 달성한 <왕의 남자>가 그나마 이 접근에서 자유롭겠다.
지난 해 여름 개봉한 <군함도>는 개봉 당일 스크린을 2,027개 차지하며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신과 함께> 같은 경우도 크리스마스 당일 1,912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이 두 작품 모두 해당일 스크린 점유율의 30%를 상회했던 셈이다. 한 작품이 전체 스크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숫자를 차지한 것은 분명 스크린 독과점이다.
스크린 독과점, 해결책은?
스크린 독과점의 가장 큰 요인으로 ‘수직계열화’가 꼽히고 있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상영관이 하나의 기업에서 진행되는 방식을 문제로 삼는 것이다. 이를테면 CJ 엔터테인먼트가 투자,제작한 영화를 CJ 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 CJ CGV에 직접 배급해서 상영하는 경우다.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경우도 롯데 시네마를 계열로 두고 있어 같은 예에 해당한다.
이러한 독점적 수직계열화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16년 의원 시절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이하 영비법)을 발의했다. 하나의 기업이 제작,배급,상영을 겸할 수 없게 하자는 것이 영비법의 핵심이다. 하지만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이음동의어로 생각하기엔 예외가 있다. 지난 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운전사>의 경우도 1,9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했는데 <택시운전사>의 투자배급을 맡은 쇼박스는 극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를 구분해서 문제에 다시 접근한 영비법 개정안이 지난 해 11월에 발의됐다. 최초의 영비법이 수직계열화 해체를 통해 스크린 독과점을 막으려했다면 개정안의 골자는 동일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 비율의 40% 이상을 차지하지 못 하게하는 상한선을 만드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프랑스는 그 상한선이 30%를 못 넘도록 규제하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만이 살 길
시장의 자율에만 맡기기엔 이제 규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고 해석해야겠다. 실제로 이 개입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를 단순히 경제적이고 산업적인 요소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접하는 문화생활 중 하나이고 그만큼 많은 영향력을 가진다. 그 나라의 정신적 그리고 문화적 성숙도를 잘 알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되는 것이 영화다. 그런데 애초에 선택할 수 있는 영화의 폭이 넓어지지 않는다면 문화 발전이 사실상 포기된 상태로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관객들은 더욱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를 갖고 있다.
2016년을 기점으로 한 해 동안 국내에서 개봉하는 영화가 1500편이 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그 중 70%는 단 하루만 상영하고 사라진다. 사실상 열 편 중 일곱 편은 관객들에게 평가받을 기회조차 못 얻는 셈이다. 한 편의 천만을 탄생시키기 위한 구조보다 200만이 다섯 편 있는 생태계가 훨씬 더 건강하지 않을까. 미국,유럽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의 영화 산업만 봐도 대형영화들의 스크린 독과점 없이도 수익과 균형 두 마리를 모두 챙기고 있다. 이제 우리 영화계도 한 단계 성숙한 도약을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천만’이라는 미명에 취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