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 맨땅에 헤딩 -30
적당한 취기와 포만감으로 기분이 매우 좋았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걷고 있으니 길 건너편에 있던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며 수차례 우리를 부른다.
“뭐 잘못했나? 혹시 이 마을에서 술 마시면 안 되는 거였나? 아니면 복장이 불량인가?”
산악인도 잘 모르겠다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경찰한테 불리면 긴장부터 하게 마련. 이런저런 괜한 걱정을 하는데 제복을 입은 구수한 경관 아저씨는 솜사탕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부끄럽게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그랬다.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 어색한 미소를 짓고 응하고 나자 경관 아저씨는
“무챠스 그라시아스(매우 감사해요)”
라면서 오늘 집에 가면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자랑할 일이 생겼다며 연신 호탕하게 웃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이번에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박힌 ‘Samsung’ 로고를 보여주며 한국을 잘 안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중심가를 벗어나자 아르마스 광장이 나왔고 광장 너머로는 광활한 태평양이 펼쳐졌다. 흐린 날의 회색빛 태평양은 음침했고 멀리 군함 한 척이 외로이 떠 있었다. 불과 며칠을 사이에 두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보니 기분이 묘했다.
방파제에는 뛰노는 어린아이들과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많았고, 해변 한쪽에 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조형물에는 많은 이들이 줄을 서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가판에서 즉석에서 갈아주는 파인애플 주스를 하나 주문했다. 주스가 만들어지는 동안 주인의 딸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가 우리를 보곤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말을 붙인다. 역시나 사진을 찍자는 요청은 빠지질 않았다. 그렇게 한두 장 찍다 보면 어느새 그 집 가족들은 물론이고 근처 상점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찍게 된다. 남미에 오니 어째 연예인이 된 느낌이 든다.
당도 높은 생과일주스를 마시며 멀리 수평선을 바라본다. 저 바다 끝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그녀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