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 맨땅에 헤딩 -29
귀여운 소년을 좇아 짐을 푼 숙소는 ‘호스페다헤(Hospedaje). 특히 남미에서 주로 접하게 되는 오스페다헤는 호스텔보다 한 등급 낮은 저렴한 숙박시설. 가정집의 방 일부를 여행자에게 제공하며 부엌과 거실, 그리고 화장실을 주인집 가족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을 바로 옆에서 체험할 수 있다. 주인 가족과 함께 만찬을 즐기게 되고 심지어 그들의 파티에 초대받는 경우도 생기는 인간적인 숙소다. 아이 엄마로 보이는 젊은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긴다.
푸에르토몬트는 태평양을 낀 작은 항구 도시. 예전 독일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도시를 일궈서 그런지 독일풍의 가옥이 많이 보였다. 칠레의 첫 도시를 마주한 느낌은 음침했다. 찌뿌둥한 날씨 탓도 있었지만 도시 자체가 풍기는 분위기는 분명히 무겁게 느껴졌다. 숙소를 나와 도시 탐방을 시작하자 곧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중심가 안쪽 깊이 들어가자 재래시장이 나타났고 지나칠 정도로 많이 보이는 오락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게임기 주위로 몰려든 어린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마치 9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유독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떠돌이 개들이 많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몸집이 거대한 종의 개들만 보인다. 고개만 돌리면 어슬렁거리는 큼지막한 떠돌이 개들의 모습이 보였을 정도. 이쪽 골목에서 큼지막한 개 한 마리가 “컹컹!”하고 짖자 저쪽 골목에서 서너 마리가 “왈왈!”하고 응답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면 도로는 금세 혼잡해진다. 자연히 지나던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자동차들도 급정거하며 욕설을 내뱉는다. 말 그대로 ‘개판’이다. 다른 골목의 사정도 마찬가지인지 경적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외지인이 보기에는 다소 흥미로운 장면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큰 골칫거리. 나중에 알고 보니 칠레 전역에 떠돌이 개들이 산재해 칠레 당국도 큰 고민이라는 말을 들었다.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개들의 모습은 귀엽지만 물리면 광견병을 비롯해 각종 질병 감염의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저렴한 레스토랑에 앉아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오늘의 메뉴는 쿠란토(Curanto). ‘뜨거운 돌’이라는 뜻을 지닌 쿠란토는 칠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로 인근 칠로에 섬(Isla Chiloé)의 특산요리다. 땅에 구멍을 내고 그 위에 장작불을 올려 생선과 조개, 닭고기, 햄, 감자 등을 넣고 끓인 영양 만점의 탕. 태평양에서 갓 잡은 큼지막한 조갯살은 한입에 넣기에도 벅찰 정도다. 쫄깃쫄깃한 조갯살을 씹으니 깊은 바다의 향이 느껴졌고 닭고기의 맛은 삼계탕의 그것과 비슷했다.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얼큰하게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