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 맨땅에 헤딩 -45
진흙으로 범벅된 티셔츠와 반바지, 빗물에 젖은 속옷과 신발. 젖은 빨래를 하느라 오전 내내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덧 체크아웃해야 할 시간이다. 비가 오다 안 오다 하니 관광 욕심도 생기지 않았다. 도대체 일 년 내내 비가 오지 않는 지구 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 맞기는 맞는 것인가! 인류가 관측한 이래 비를 보지 못했다는 지역도 아타카마 사막 근처라던데. 아타카마 사막에서의 2박 3일 내내 비를 구경했으니 모두 거짓말 같이 느껴진다.
날씨만 좋았으면 산 페드로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타티오 간헐천(Tatio Geysers) 투어에 참여해 멋진 일출을 보고 왔을 것이다. 유쾌했던 어제 그 안내자 말대로 하늘이 주신 선물인지 물이 부족한 이곳 주민의 얼굴엔 온통 웃음꽃이 피어있다.
“얼른 여길 뜨자, 옷은 옷대로 다 젖고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영 재미가 없네. 게다가 물가도 비싸, 숙소에서 와이파이도 안 잡혀. 심심해 죽겠구먼.”
오늘도 투덜거리는 산악인은 얼른 칠레를 벗어나고 싶은 모습이 역력했다.
사막에 지어진 도시라 숙소를 벗어나면 딱히 갈 곳이 없다. 교회에서 1시간, 아르마스 광장에 앉아서 또 1시간, 늦은 점심을 아주 천천히 먹으며 또 1시간을 보냈음에도 아리카로 떠나는 버스에 타기까지는 아직도 3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굵은 빗방울을 다시 뿌려대기 시작했다. 연일 계속되는 장대비에 이제는 이가 갈릴 정도다. 열악한 산 페드로의 버스 터미널엔 대기실도 없었고 그렇다고 비를 피할 천막조차 보이지 않았다. 별수 없이 무거운 배낭을 앞뒤로 멘 채 우산을 펴 든다. 하지만 작은 우산은 장대비를 막아주지 못했고 옷은 모두 젖고 만다. 게다가 체온이 금세 떨어져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다.
괜스레 화가 났다. 원래 비가 많은 지역이었다면 억울 하지라도 않은데 말이다. 각종 안내책자와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아타카마 사막의 소개 문구를 당장 뜯어고치고 싶었다. 2박 3일 동안 내린 강우량만 얼핏 잡아도 50mm는 넘어 보였다. 불과 이틀 동안 10년 치가 넘는 비가 내렸으니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축제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아리카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을 때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버스 안은 물에 젖은 승객들의 꿉꿉한 냄새가 진동했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한숨 푹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