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로 맨땅에 헤딩 -46
아리카에 도착하자 밤새 가동된 에어컨으로 축축했던 옷은 바싹 말라 있었다. 드디어 칠레의 최북단까지 올라왔다. 칠레에서의 마지막 여정이자 남미 여행의 1/3이 지나는 시점이다. 아리카(Arica)는 칠레의 북부 관문으로 태평양에 면한 항구도시. 끊임없는 분쟁으로 볼리비아와 페루가 한 차례씩 지배했고 이제는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의 땅이 되었다. 아리카는 오래전부터 해적들의 약탈과 각종 분쟁, 해일과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 늘 불행한 도시였다. 하지만 이제는 볼리비아와 칠레 북부의 광산 자원을 등에 업은 자동차 조립 공업의 발전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터미널을 빠져나오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역시나 떠돌이 개들이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개들이 보이지 않으면 어째 마음이 불안할 것도 같다.
얼른 칠레를 벗어나고 싶었기에 중심가만 둘러보고 페루로 넘어갈 생각이다. 터미널에서 중심가까지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침으로 큼지막한 바나나 두어 개를 먹으며 천천히 걸으니 1시간 정도 걸린다.
중심가에 접어들자 눈길을 사로잡는 조각이 곳곳에 있는 커다란 공원이 나타났고 곧이어 태평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방에 보이는 높은 언덕 위엔 예수로 추정되는 조각상이 보인다. 두 팔을 벌린 채 태평양을 바라보는 조각상의 모습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모방한 느낌이 강했다.
오랜 시간 동안 배낭을 메고 다녀도 이젠 어깨가 아프지 않다. 목 베개와 담요, 티셔츠 하나와 양말 두 켤레. 짐을 하나둘 버리고 나니 이젠 큰 배낭도 매우 가벼워졌다.
수산시장이 많이 보이는 것이 해산물이 풍부한 모양이다.
“무이 그란데 페스(매우 큰 물고기)”
어마어마한 크기의 물고기를 계속 보고 있자니 회를 뜨던 아저씨가 물고기를 들고 멋진 자세를 잡아준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긴 방파제를 따라 천천히 바다 쪽으로 접근했다. 방파제 바깥쪽은 성난 파도가 계속해서 몰아쳤고 안쪽은 잔잔한 물결 위로 작은 동력선 여러 척이 묶여 있는 것이 사뭇 대조적이다. 방파제엔 갓 잡은 싱싱한 게를 팔던 어부도 보였고 방파제 끝엔 작은 등대가 외로이 서 있다. 제법 높은 파도가 치는 가까운 바다엔 파도타기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다시 중심가로 돌아와 깔끔한 타일이 깔린 콜론 광장(Plaza de Colon)을 지나자 눈길을 사로잡는 이름 모를 작은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갈색과 흰색이 절묘하게 혼합된 모습이 마치 장난감 ‘레고’의 건물을 연상시킨다. 눈에 띄는 외부의 모습만큼 아기자기한 내부의 모습 역시 인상 깊다. 하느님의 집에 오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진다. 지친 다리를 달래며 늘 그랬듯이 마음속으로 여행 운을 빈다.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국경 버스에 올랐다. 여기서 페루의 국경도시인 타크나는 지척이다. 칠레의 아리카와 페루의 타크나를 연결하는 국경 버스는 수시로 운행된다. 버스비 외에 국경을 넘는 별도의 수수료가 들게 되니 반드시 숙지하자.
버스가 출발하자 곧 창밖으로 아리카의 모습이 멀어져 간다. 내 생애 언제 다시 칠레를 찾을 수 있을까. 보름이나 머물러서 그런지 많이 아쉽다(그로부터 4년 뒤, 2016년 봄, 칠레의 산티아고와 이스터섬을 다시 찾았다).
“안녕 칠레, 챠우”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