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레자식

'나는 불효를 하고 싶지 않았다'

by momoblanc

'너 지금 후레자식이네.'

이 말은 되새기는 순간 칼처럼 가슴에 꽂힌다.

내 마음속의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나는 그 어원을 찾아보았다.

ふてい [不定]

부정, 일정하지 않음.

ふてい [不弟·不悌]

부제, 연장자에게 공손하지 않음.

ふてい [不貞]

부정,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않음.

ふてい [不逞]

불령, 괘씸함, 뻔뻔스러움.


일본어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일본어 ふてい(不逞), 즉 제멋대로, 불량, 무뢰한을 뜻하는 단어에서 변형된 것이라 한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어 욕설 속에 스며들어, 지금의 “후레자식”이 된 것이다.

 또는 원래 있던 “호로자식”이라는 말에서 발음이 변해 굳어졌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말은 부모에게 불효하고 패륜적인 사람을 낙인찍는 가장 거친 표현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 그 단어 속에서 스스로를 본다. “후레자식.”


15년 전, 나는 일본어문학과에 편입했다. 제2외국어로 배웠던 일본어에 흥미가 있었고, 더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히라가나 수준에서 3학년 전공 수업을 듣는 건 고통에 가까웠다. 언어를 이미 자기 손처럼 다루는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늘 부족한 자리를 채우려 허덕였다.

그래도 버텼다. 낮은 학점을 보완하기 위해 교양 과목을 채우며 졸업장을 받았다. 일본 유학은 경제적 여건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대신 일본계 회사에 취직해 1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연봉 2,400만 원에서 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손에 쥐고, 결국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꿈을 실현했다.

도쿄 시부야의 어학원,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고, 그 시절은 내 인생을 가장 반짝이게 만든 시간이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가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늘 나를 붙잡았다. 나는 다시 엄마의 집으로 돌아왔다. 2025년 5월이었다. 그 전 해에는 강아지와 단둘이 월세 아파트에서 살았다. 힘들었지만, 내 집처럼 꾸미고 지내는 동안 만큼은 안락했다. 지인들과 가족(엄마 제외)의 도움으로 생활을 버텼고, 무엇보다 10살 노견이 뒤늦게 사회성을 키우며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이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올해 강아지가 폐수종 진단을 받으며 상황은 급변했다. 혼자 집에 둘 수 없어 결국 엄마 집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악마라고까지 불렀던 엄마와 다시 한집살이를 시작했다.


이사 후 몇 달간은 좋았다. 1년간 떨어져 살았으니 조금은 나아졌으리라... 서로 애틋했고 잘하려고 했다.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알아서 하려고 했다.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엄마는 다시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9월 2일 아침 출근 준비 중, 엄마는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물을 오래 쓴다, 화장실 불이 나간다, 별것 아닌 문제에서 시작된 말다툼은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됐다. 엄마는 생활비를 요구했다. 처음엔 백만 원, 그다음엔 오십만 원. 나는 이미 빚더미에 앉아 있었다. 나는 2년뒤 나갈 집을 계약해둔 상태고, 모모의 약값과 병원비로 매달 150만 원이 나가고, 엄마 수술비까지 내 카드로 결제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돈을 요구했다. 내 상황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날, 나는 터졌다. 40년간 쌓여온 응어리가 한순간에 폭발했다.

“너는 악마다. 넌 사람이 아니다. 너는 지옥에 갈 거다.”

내 입에서 쏟아진 말들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엄마에게 꽂혔다. 동시에 그것은 내 속에서 곪아 터진 고름이기도 했다. 차라리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무너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후, 우리 집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말은커녕 공기조차 무겁다. 집은 황폐해졌고, 나는 그 속에서 후레자식이 되었다.

어쩌면 정말 후레자식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후레자식”이라는 단어는, 이제 내 인생의 낙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