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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Aug 27. 2019

쏜애플, 2월

조각글


쏜애플 - 계몽(2019)





텅 빈 천장만 바라보던 주은은 무작정 길을 나섰다. 언제까지 시들고만 있어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먹구름처럼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을 하고, 어떤 이는 사랑을 하며 보내고 있을 시간. 그녀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옷깃을 여몄다. 만날 사람도 정확한 목적지도 없었지만, 이 지긋지긋한 작은 방을 벗어난다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너저분하게 헝클어져 있던 신발장을 보던 주은은 엄마를 떠올렸다. 

시장에서 산 ‘짝퉁’ 가방을 기세등등하게 메고 다녔던 엄마. 억척스러운 그녀는 집 앞에서 파는 일 이만원 짜리 보세 운동화를 헤질 때까지 신고 다니곤 했다. 좋은 것 좀 사서 신지, 속상해 하던 주은의 푸념에 그녀는 야야, 파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중요하노, 늘 그렇게 대답했다. 주은은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늘 다음으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하고싶은 일을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상경했던 그 때에 비해, 현재 자신의 몰골은 숨기고 싶을 만큼 너절했다. 그래, 한 때는 그녀도 꿈이 있었다.


운동화를 신으며 거울을 보던 주은의 눈에 오른쪽 뺨이 들어왔다. 2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작은 생채기가 붉게 나 있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연약한 상처였다. 푸석한 얼굴을 매만지다가 문득 마음이 쓰라렸다. 무존재로 존재하는 흉터가 그녀의 하루를 닮아 있었다.


-


2월. 겨울의 끝자락이었지만, 서울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진눈깨비는 작은 먼지처럼, 세상에 대한 두려움처럼 도심 곳곳을 휘젓고 있었다. 매서운 공기가 코 끝을 차갑게 에웠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겨울이었다. 평일 오후, 대낮의 거리. 바쁜 사람들 틈에서 주은은 이방인에 불과했다.


“주문 하시겠어요?”


추위를 피해 주은이 겨우 자리를 찾아 들어간 곳은 고작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아르바이트생은 카운터에 멀뚱히 서있는 주은을 노골적인 시선으로 훑었다. 특유의 냉소와 비웃음이 서린 눈빛에 주은은 습관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런 행동이 자신을 더 작게 만든다는 것을, 주은은 정작 알 길이 없었다.


“저..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아메리카노를 받아든 주은은 구석 자리에 털썩, 쓰러지듯 앉았다. 


6개월. 반 년 만에 집을 나와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온전한 추위를 느낀 것, 이름 모를 사람들과 마주했던 것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쉬운 일들이 그녀에겐 왜 이렇게 힘에 부친건지. 왜 세상은 힘에 부친 것 투성이인지. 순간적인 용기에 이끌려 집 밖을 나선 주은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는 왈칵 울고 싶었다. 


어쩌면 주은을 버티게 했던 건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시 달라진 게 있을지 몰라, 하는 알량한 기대감. 눈 앞의 현실과 대면한 주은은 마음 속 뜨거운 뭔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걸 느꼈다. 못다 핀 희망 한 송이가, 아지랑이처럼 커피 위로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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