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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Nov 25. 2022

지난한 일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영화 <새콤달콤> (2021) 리뷰


이불 속에서 별 것없는 일상을 조잘조잘 늘어놓으며 지나는 하루를 마감할 때, 나는 비로소 사랑을 하고 있구나- 하고 다시 생각한다. 특별하지 않은 지난한 일상을 아무 거리낌없이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때로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보이기 보다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게 편하고, 언젠가부터는 삼키는 말이 내뱉는 말보다 많아진 나로서는 성인이 되고 사회라는 본격적인 틀에 들어서면서 초반까지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상황이 많았던 것 같다. (지나친 자기연민인가?) 그렇게 번번이 찾아오는 고독 속에서도 꿋꿋이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던 데는 사랑의 힘이 크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여전히 내 편이 있다는 듬직함과 이 순간도 결국은 지나고 말 거라는 안도감. 그래서 나에게 사랑은 '일상 속 휴식'과도 같은 말이다. 그를 떠올릴 때면 주어진 내 눈앞의 상황이 언제나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선 좋았든 나빴든 지나간 시간에 감사를 해야겠구나.


제목이 주는 어감처럼, 이야기의 흐름도 예측할 수 없다. 청춘들의 보통의 연애인가 싶더니 결국은 이별하게 되는구나 생각이 들다가, 한편으로는 열정이라는 타이틀 아래 그 이상의 것을 바라다가 토사구팽해버리는 일부 회사를 고발하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고. 결국은 쳇바퀴 돌듯 모든 일은 지나고 상황만 바뀐 채 원점으로 돌아온다. 애타게 사랑하다가도 돌아서면 금세 남이 되고, 때로는 서로를 미워하기 바빴던 관계에서도 갈라진 틈 사이로 스멀스멀 정이 피어오른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이는 우리네 보통의 일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익숙한 나날이 쌓이다 보면 결국 무뎌지게 마련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알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실수를 범하고 있을까.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도 환경이 변하면 상황처럼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도 쉽게 흔들릴 테다. 계절은 변하지만 매년 겨울이 돌아오듯 관계의 변화도 무던히 견디고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검정치마의 노랫말처럼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겠지만 모든 걸 참아내고 굳건히 내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우직함을 가진 사람. (사실 난 자신있음-)


엇갈린 네 남녀의 모습을 보며 나의 사랑은 지금껏 어떤 기억이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과거는 돌아보면 쓰기만 했고, 현재는 언젠가 과거가 될 거란 사실을 망각한 채 나의 오늘은 늘 달았다. 실은 과거를 추억하며 행복했던 적도 있을 테고, 현재에서도 수많은 갈등과 차이를 경험하며 많은 괴로움이 있었을 텐데 난 왜 늘 새콤달콤한 사랑의 속성을 잊고 있었는지. 언젠가 환승을 당해본 적도 있는 것 같고, (당시는 몰랐지만) 환승의 대상이 된 경험도 있는 것 같다.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고 새롭게 시작한 사랑은 대부분 끝까지 행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듯 하다. 결국 영화 속에서 장혁, 다은, 보영이 겪은 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놓치면 안 돼,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 한순간 흔들림에 동요하지 말자- 하는 그런 진부하지만 당연한 깨달음의 댓가가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이라는 점은 조금 가혹하지만.



희한하게 장혁이 빡침포인트를 유발하는 캐릭터인데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에너지를 준다. 근데 더 희한한 게 보고 나면 기분은 찜찜한 영화. 다른 남자와 제주 여행을 가려 공항까지 간 다은이지만, 그녀가 진짜 마음 속으로 떠올리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 설렘은 짧고 인연은 한번뿐이다. 상황으로 멀어져야 했던 장혁과 다은의 모습이, 그리고 차 안에서 현실적인 다툼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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