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두 명을 키우는 동료가 자녀가 없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부럽지만 더 나이 들어서는 반대로 내가 부러워할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신을 아이들이 봉양할까?' 이렇게 말을 하며 '키우는 걸로 끝내야지'라고 말했다.
두 살 차이면 싸우지 않느냐고 물으니 차별 없이 똑같이 대해주니까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오 맞다. 부모의 역할은 솔로몬도 되어야 한다.
공정하게 똑같이 차별 없이 형평성에 맞게
부모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는 동료가 더 멋져 보였다.
맞다. 난 차별을 많이 받았고 그게 상처가 됐다.
엄마는 항상 나한테 양보하라고 했다. 네가 누나니까. 누나가 되어가지고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참 오래도 나를 괴롭힌다.
한 달 전 모델하우스에서 봤던 표준어 쓰는 그 연극하는 듯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 생애에는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보고 싶다. 연극하는 듯한 따뜻한 말씨로 서로를 격려해 주는 아름다운 가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