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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oad Jun 06. 2023

사람이 책이다

[시시각각(時時刻刻)] 영남일보 5월 23일 


"고등학교 2학년 때 스스로 학교를 나와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 나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의 불합리성과 휴대폰 사용으로 억울하게 체벌 당한 경험 등으로 학교를 그만두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도권 밖의 교육을 스스로 알아보고 다양한 길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으시면, 나만의 길을 걸어간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사람 책'의 자기소개 글이다. 199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한 학생이 동료들의 칼에 찔려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그의 친구 다섯 명은 '폭력을 멈춰라'는 단체를 만들고 폭력추방운동을 시작했다. 그 후 리더 격인 로니 에버겔은 편견과 고정 관념이 그 '묻지 마' 폭력의 밑바탕에 있었음을 알게 되고, 우리가 편견을 가지기 쉬운 성 소수자, 경찰, 정치인 등을 사람 책으로 등록, 대화를 통해 편견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휴먼 라이브러리를 2000년 시작했다. 사람 책이라는 말은 여기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 90여 개국 이상으로 퍼져 나간 글로벌 운동이 되었다.


국내는 2012년 3월 모든 사람은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는 기치로 휴먼 북과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경험을 나누고자 서울 노원구에서 최초로 상설 휴먼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노원구는 그 당시 서울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자치구로 꼽히면서 지역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시도로 휴먼 라이브러리를 고안하게 되었고, 개설 다음 해인 2013년에 700여 명의 휴먼 책이 등록될 정도로 호응을 얻었고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 사람 책의 개념을 우리 지역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는 지방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방법으로 사람 책을 활용하는 것이다. "표지로 책의 내용을 판단하지 마세요"라는 말처럼 지방에는 기회와 재미가 없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나본 많은 청년들,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지방에서 더 많은 기회를 발견하고 주도적 삶의 재미를 즐기고 있었다. 이 청년들을 사람 책으로 등록해 이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면 지방에 대한 편견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지역에 있는 청년들에 대한 멘토로 사람 책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 책연(冊緣)이라는 모임이 있다. 책을 매개로 세대와 세대가 만나는 '책으로 마음 잇기' 모임이다. 선배가 청년에게 추천할 책 1권을 건네면 청년은 책과 함께 인생 멘토 역할을 할 선배까지 선택하는 것이다. 책연과 관련, "우리 사회의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와 만나야 한다. 우리는 책을 통해 다음 세대를 만나고자 한다. 책을 통해 우리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는 책연 발대식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셋째는 사람 책을 활용해 우리 지역만의 '다움' 스토리를 전달, 관계 인구와 교류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여행지를 다시 방문하고 싶을까. 자연이나 문화유산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있는 여행지는 다시 방문하고 싶을 가능성이 크다. 지역의 오래된 방앗간, 양조장 등 지역의 지나간 시간에 대한 이야기, 지역의 맛집, 장소 등에 얽힌 일상과 오늘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등 사람 책의 활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 관광이 아닌 경험이, 감동이 일회성 관광객을 관계인구와 교류 인구로 바꿀 수 있다. "여행은 다른 문화를 만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얘기했다. 사람을 만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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