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주먹의 힘을 믿은 소년
꿈을 만난 순간의 기억. 어떤 사람은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수많은 기억 가운데 하나 정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 기억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느 날, 꿈을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동을 품은 기억. 음악을 꿈으로 만난 그 날들. 그 기억을 꺼내봅니다. 그리고 그 충만했던 순간을 다시 살아봅니다.
내가 태권도를 시작하고 나서 몇 개월 만에 주장이 전학을 갔다. 태권도부를 지도하는 사범님은 외부에서 오는 젊은 남자였다. 사범님이 새로 주장을 뽑아야 한다고 했을 때 6학년 형들은 5명이었다. 그들 5명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범님의 시선을 피했다. 태권도부 주장은 사실 남학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검정색 띠를 두른 도복을 입고 앞줄에 서서 구령을 크게 외치면 다른 학생들은 그 구령에 따라서 동작을 한다. 태권도는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무술이었고, 그런 무술을 하는 학생들을 이끄는 모습은 당연히 강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주장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사범님의 심부름과 도복 정리뿐이었다. 물론 행사가 있으면 구령을 붙이긴 했지만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6학년들에게 남은 몇 개월 동안 주장을 맡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두 머뭇거리고 시선을 피할 때 그중 한 명이 나를 가리켰다.
“5학년이 주장하면 안 되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사범님은 대답을 찾지 못해 잠시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 틈에 다른 형들이 나를 보며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크다, 발차기를 잘한다, 목소리가 크다, 리더십이 있다. 그게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나를 칭찬하는 말들이었다. 물론 나는 같은 나이의 범석이보다 덩치도 작았고, 태권도를 시작한 게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 목소리는 큰지 몰라도 20명도 되지 않는, 게다가 6학년 5명을 빼면 1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모인 데서 내가 리더십을 발휘할 일이 없었다는 건 분명했다. 그러니까 그건 자신들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작은 계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계략이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오히려 작은 흥분감에 기분이 들뜨기까지 했다. 만일 그게 계략이었다는 걸 알았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맨손으로 벽돌을 깨 봤는지, 송판은 몇 장을 격파할 수 있는지, 한꺼번에 몇 명과 싸워봤는지가 새로운 태권도부 주장에 대한 다른 아이들의 관심거리였다.
보통은 6학년들이 맡게 되는 주장 자리를 차지한 내게는 나도 눈치채지 못한 질투의 시선이 있었다. 그런 감정을 가진 아이들 가운데 몇 명은 실제로 내게 도전을 해왔다. 태권도부 주장이라는 타이틀은 그들에게 도전할 만한 자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명이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혼자 남아 도복을 정리하던 내게 다가와 주먹을 날렸다.
전체 180명의 동급생 가운데 지금은 대부분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내게 주먹을 날린 녀석의 이름과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싸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기억은 상대를 붙잡고 함께 땅을 뒹구는 데서 시작한다. 아마, 윤서환-그놈의 이름이다-은 분명히 내 얼굴을 때렸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 얼굴에 닿았을 그 주먹의 느낌은 전혀 기억에 없다. 분명히 남아 있는 기억은 그 녀석이 나를 때려눕히고 돌아서서 으스대며 걸어가는 모습과 눈물을 흘리며 일어선 내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다. 어딜 가? 이리와! 계속해! 나는 다시 돌아와 싸움을 계속하자고 소리쳤다. 서환이는 망설이지 않고 다시 와서는 처음과 같이 내게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또다시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져 갔다. 나는 한 번 더 소리쳤다. 그리고 똑같은 결과가 반복되었다.
나는 3번의 싸움에서 단 한 차례도 주먹을 날리지 못했다. 그리고 흙먼지 날리는 텅 빈 운동장에 혼자 남겨졌다. 싸움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왜 상대를 한 대도 때리지 못한 건지, 싸움이 끝나고 어떻게 집에 돌아갔는지, 부모님이 그 싸움을 눈치채기는 했는지,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억울한 감정이 생생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서환이는 우리 학교에서 노래를 제일 잘하는 아이였다. 당시에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노래를 하기도 했다. 가끔 전체 조회가 있는 월요일 아침에 운동장 단상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까만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척 보기에도 싸움 깨나 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러니까 서환이는 우리 학교의 스타였다. 아마도 그런 명성을 누리던 서환이에게 있어서 5학년에 태권도부 주장이 된 나는 제압해야만 할 라이벌이라고 생각되었을지도 모른다. 서환이의 계획은 제대로 성공했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작은 싸움은 전교생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나는, 11살짜리 소년의 무의식은, 태권도부 주장의 주먹에 실린 엄청난 위력을 믿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만일 내가 주먹을 휘두르면 벽돌이 산산조각이 나고 송판이 가루가 될 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진짜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이동 중이었던 나는 허무하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을 운동회에서 태권도부가 격파 시범을 할 때, 나는 쌓아놓은 5장의 기왓장을 하나밖에 깨뜨리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은 온몸을 던져 주먹을 바닥까지 밀어 내렸고, 그 결과 한 명도 빠짐없이 5장의 기왓장을 박살 냈다. 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주먹을 가졌다고 믿었던 나는 맨 위에 있는 기왓장에 주먹이 닿는 순간 동작을 멈췄다. 엄청난 힘이 내 주먹에서 쏟아져 나가고 5장의 기왓장을 간단히 부순 뒤 땅에 큰바람을 일으킨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 강력한 주먹은 단 한 장의 기왓장만을 깨뜨렸고 보이지 않는 힘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현실을 깨달았다.
서환이가 나를 시기했던 것처럼 나 역시 서환이를 부러워했다. 남들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교장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고 전교생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서환이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수천 장의 기왓장이 깨지는 소리보다 더 큰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박수를 치는 사람들 속엔 내 노랫소리를 듣고 패배를 인정한 서환이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상상은 내성적인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다. 하지만 기왓장이 깨지지 않은 것처럼,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없는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