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친구들과의 카톡방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온통 돈과 관련된 얘기뿐이었거든요. 비트코인과 주식, 연봉과 회사생활, 부동산까지. 돈이 곧 필수재인 세상이지만 모든 의사결정 근간에 자본이 있음이 어째 좀 불편했습니다. 하나 둘 꼰대 아재가 돼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괜히 정신이 좀먹는 느낌도 들고 그랬습니다. 막상 그럼 뭐가 더 중요한데? 하는 반문에는 스스로 명확한 답이 서 있는 게 아니어서 조금 더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돈 몇 푼 목매고 싶지 않다는 괜한 자존심에 부러 센 척도 많이 하고 그렇게 투닥거리면서 지냈습니다.
돌이켜보면 취준생 시절 운 좋게 세 군데 기업에 합격했었는데, 어쩌다 그중 가장 연봉을 적게 주는 곳을 첫 직장으로 선택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다른 한 곳이었던 금융권과 대략 천만 원 이상의 초봉 차이가 났음에도 말이죠. 제 커리어에서 연봉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믿었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만의 선택을 고수했습니다. "난 내 인생을 돈으로 선택하지는 않는 사람이야" 마음 끄트머리에 달린 약간의 우월감이라도 발현된 걸까요? 마치 속세의 너희와는 좀 다른, 고고한 학이라도 된 마냥 그렇게 스스로를 포장하고 지탱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랬던 제가 부동산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투자의 성공과 실패를 맛봐가며 평생 부동산 투자자로서의 길을 꿈꾸고 있습니다. 참 재밌죠? 어떤 면에선 자본의 끝이라고 하는 그 길을 말이죠.
처음 이 분야를 공부하며 내면의 선입견과 매일 싸워야 했습니다. 집을 자산으로, 땅을 돈 버는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고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자본을 맹종하지 않고 여기서 성공할 수 있을까? 공부를 하는 매 순간이 번민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심리상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돈에 관한 주제가 떠올랐습니다. 제 복잡한 심경을 솔직하게 꺼냈을 때, 선생님으로부터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이 되돌아왔습니다.
"경도님은 어떨 때 가장 행복하세요?"
"10년 뒤, 20년 뒤에는 어떤 삶을 꿈꾸시나요?"
아주 단순한 질문입니다만 문득 대답이 아득해졌습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부재하다면 어떤 것으로 가치의 우위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해주신 질문의 의도와 그 답을 곰곰이 곱씹어 본 결과, 저는 제 안의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리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저에 대해 먼저 성찰하고, 그 결과 추구해야 할 스스로의 행복 기준점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아마도 그 가장 꼭대기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 그려져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몇몇 계기를 통해 가족이라는 단어를 좀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었거든요.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안정감을 누리고 싶다는 니즈가 생겼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문화, 여가 접근성 측면에서 서울에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거주환경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하고 싶은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정도의 삶을 구축하는 것이 제가 꿈꾸는 첫 번째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좋아하는 주변의 지인들과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삶을 또 다른 삶의 목표로 삼고자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함께일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임을 깨달았거든요. 이미 많은 친구들, 선후배들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인생에 영향을, 영감을 발휘해 준 모든 가까운 분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되돌려주고, 편안하고 기분 좋은 수다가 함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인생의 상위 가치를 나열해보는 방식을 통해 순식간에 번뇌가 사라짐을 느꼈습니다. 제가 목표하는 이 가치들이 대단히 특별하지 않을지언정 지금보다 약간 더 열심히 돈을 벌고, 부동산을 공부해야하는 이유가 되어줄 테니 말이죠. 과거에도 그래 왔듯 미래에도 '수단으로써 자본'이 그 소임을 다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또 다른 세 번째, 네 번째 상위 가치를 무엇으로 두어야 할까요? 앞으로도 계속 저 스스로 행복의 근간을 탐구해 볼 예정입니다. 이 방식이야말로 다만 돈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목표하는 삶을 향해 달려가는, 완벽한 동기부여가 되어줌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