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을 따고 공인중개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주변에 공시하자, 소소한 삶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 지인들이 자신의 크고 작은 부동산 문제와 관심 사항, 궁금한 점 등을 저에게 종종 물어오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저 이번에 처음 독립하는데 막상 큰돈을 지불하려니 걱정되어서요.. 이 집 계약해도 괜찮을까요?"
"전세 갱신을 앞두고 살펴보니, 그 사이에 집주인이 대출을 더 받았더라고. 재계약에 이슈 없겠지?"
"XX동에 오피스텔 알아보는 중인데 매물이 죄다 전입신고가 안 된다더라? 왜 그런 거야?"
아무래도 또래 중에 1인 가구가 많다 보니 전월세 계약에 관해 궁금한 점을 물어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사실 제게 생긴 지식이라 해봤자 시험에서 답을 맞히기 위한 이론적인 부분들 위주다 보니, 위 질문들 중엔 저도 잘 모르는 리얼 월드스런 질문이 많았죠. 나한테 묻기보다는 네이버 지식인을 찾는 편이 낫지 않으려나? 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자격증이 있는 사람의 공언으로 인해 질문자가 불안감을 약간이나마 상쇄하는 모습들을 몇 번 보게 되자, 어쩌면 제가 좀 더 알아보고 코멘트를 남겨주는 것이 그들에겐 꽤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달에는 제 실제 친구의 계약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 직접적인 도움을 준 사례가 생겼습니다. 독립을 준비 중인 친구와 밥을 먹다가 거주지 물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목표하는 동네에 원하는 조건으로 집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더라는 얘기와 함께 인생 첫 대출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문적인 얘기랄 것도 없이 집을 알아보기 위한 몇 가지 최소한의 기본 조언을 건네면서, 마침 제가 살고 있는 역세권 청년 주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줬습니다.
만남 이후 그즈음 해서, 우연찮게 지인이 목표하는 동네의 청년 주택에 퇴거인이 생길 거란 정보를 접했습니다. 제가 직접 혜택을 누리고 있기도 한 SH의 이 사업은 주변보다 1~20% 유리한 조건으로 입주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죠. 한편으론 서울시를 끼고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생애 최초로 대출을 받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불안감을 낮춰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입주 조건만 된다면 사실 이곳이 THE BEST 선택지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선 친구의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무주택, 차량 여부, 소득 등 기본적인 조건을 확인하고, 그의 입주자금 상황과 더불어 실제 계약 시 필요한 대출 가능 여부도 확인했습니다.
친구의 조건 : 보증금 1,500 이하, 월세 60 정도
대상 물건 : 보증금 8,000, 월세 47
언뜻 비싸 보이지만, 본 청년 주택 사업의 경우 SH에서 보증금의 절반을 무이자 대출로 지원해 줍니다. 나머지 절반의 보증금에 대해서는 민간은행 전세대출을 추가로 받을 수 있으니, 실제 본인이 준비해야 할 현금은 약 1천만 원 정도입니다.
위 내용을 적용하여 조건을 다시 정리 해보면
필요 현금 : 1,000만 원
*SH무이자 대출 4,000 + 은행 전세대출 3,000
월 지불 금액 : 57 (월세 47 + 은행 대출 월 이자 10)
결론적으로, 그가 원했던 것보다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전세금 반환의 이슈가 발생할 확률이 제로(0)인 역세권에 신축 거주지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상기 유리한 조건 때문에) 경쟁이 더 높아지기 전에 얼른 이 물건에 대한 입도 선매 의사를 밝혀두어야 했습니다. 해당 임대주택 홈페이지에 입주 대기수요로 등록을 해놓고 별도로 관리사무실에도 연락을 취해두었습니다. 며칠 후 현재 거주 중인 임차인을 만나 방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곧바로 그 주말의 하루를 잡고 지인을 대동해서 직접 - 마치 중개사가 클라이언트를 데리고 집을 보여주는 것처럼 - 거주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오지랖이긴 하지만서도, 집을 보러 다니는 상황에 익숙지 않았던 친구를 대신해 몇 가지 사항들을 꼼꼼하게 체크했습니다.
"매달 관리비는 얼마쯤 나오나요?"
"화장실 수압은 괜찮나요?"
"안쪽 방이 좀 서늘한데.. 평소에 해가 잘 드나요?"
집을 볼 때 꼭 체크해야 하는 리스트들을 미리 준비한 덕에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전 거주자분들이 처리하기 힘드셨을 TV 책장과 하부장 등을 적정한 가격에 승계할 수 있도록 추진하며 그분들도 제 친구의 입주를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수 있게 푸쉬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하며 한편으로는 이 일이 실제 중개사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며칠 후 관리사무소로부터 임차인 승계의 내용을 차례로 컨펌받았고, 친구는 드디어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중개료에 해당하는 사례비를 지급하겠다는 친구의 말에 맛있는 밥이나 한 끼 사달라고 했습니다. 해당 사례를 제 인생 첫 공인중개의 역사로 기록해도 되겠냐는 허락을 득한 걸로 저 역시도 만족스러운 상황이었으니 말이죠.
사실 인생을 살며 부동산 거래를 여러 번 해 본 분들은 굳이 자격증 없이도 저에 비해 훨씬 더 잘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동산카페, 단톡방 다주택자 고수분들까지 안 가더라도, 이르게 독립하여 이사 다니는 친구들이 오히려 전셋집 구하는 건 도사더라니까요. 다만 어떤 복잡한 상황들에 있어서 이론적인 배경과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주변 친구 및 지인들에게 실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효용감이 들어 굉장히 기뻤습니다.
이제 겨우 부린이, 초보 중개사일 뿐입니다만 주변에서 주는 질문이나 상담 요청을 귀찮아하지 않고 내 문제처럼 고민하는 요즘의 시간들이 즐겁습니다. 앞으로 제가 부동산이란 콘텐츠를 파고들다 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그 순간이 되었을 때, 지금 이 소소한 경험들이 저에게 더 큰 밸류로 돌아와 줄 것이라고 믿으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