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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왕들의 연애담
by
쏘블리
Sep 23. 2019
그와 세 번째쯤 만나던 날인가
그가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던 때쯤인가
우리는 문래동의 어느 와인바에서 와인을 마셨다.
여름밤 적당한 온도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불빛과 취기,
모든 장면이 낭만적이었던 그 순간,
와인바를 나와 콜택시를 불렀는데
그가 가는 집 방향의 택시가 먼저 잡혔다.
진짜 먼저 가도 되냐고,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냐고 당황하는 그를
굳이 먼저 보내고 쿨하게 혼자 집에 갔다.
그와 강원도로 여행을 갔을 때였나,
얇은 옷을 입고 전망대에 올랐다가
뚝 떨어진 기온과 세찬 바람에 오들오들 떨었다.
내게 옷을 벗어주겠다는 그와
벗어주면 추울 거라고 괜찮다고 손사래 치는 나는
서로에게 옷을 입혀주려고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
결국, 그냥 내려왔다.
우리의 첫 만남에는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서로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나와, 내가 좋은걸 하면 더 좋다는 그가 만나니 서로를 배려하느라 늘 투닥거렸다.
바쁜 시간에 전화를 안 하려다 보니 너무 전화를 안 하게 된다거나, 서로의 스케줄을 배려하다 보니 서로의 만남이 후순위로 밀린다거나, 각자 원하는 게 있지만 상대가 원하는 걸 해도 괜찮으니 모든 결정이 애매한 상태에 머무른다거나
그런 애매모호한 일들이 이어졌다.
서로를 너무 배려해서
나만큼 상대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
다
. 서로의 마음을 오해했던 적이 많아서 가끔 우리는 그때를 생각하며 웃곤 한다.
요즘
배려왕들인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결정하는 일이 많아지니 또 옛날 같은 일이 반복된다.
"내가 확실히 원하는 것이 아니면
네가 좋은 걸 하면 좋겠어
"
결정을 미루고 남겨두는 일들,
계속 물어보는 일들,
무엇을 하겠다고 싸우는 것보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
서로의 의사를 탐색하는 시간이 길다.
후딱후딱 빠르게 결정하는 일은 없지만 이것도 꽤나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기에.
by. 쏘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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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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