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적 삶
요즘 '집 = 정착 = 안정'이라는 패러다임에 변화가 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구속을 싫어하는 탓에 10년 전부터 회사를 다니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춰왔고 이 역시 큰 흐름의 일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 곳에 머물러 살면서 같은 곳으로 매일 출근하는 일은 지금보다 줄어들 게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노마드, 리모트 워크, 코워킹 스페이스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소유에서 공유의 가치로 이동 중이며 평생에 걸쳐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
미니멀 라이프가 가능해진 이유, 컴퓨터
모든 것이 휴대전화, 패드, 노트북을 포함한 컴퓨터 안에 들어오고 있다. 더 이상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게 되었고 종이나 연습장도 별로 필요가 없게 되었다. CD와 테이프를 살 필요도 없고 오디오도 플레이어도 못 본 지 오래다. TV가 없어도 온라인에서 원하는 영상은 다 찾을 수 있고 따로 카메라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나름 감성적인 면이 있어서 손으로 넘겨보는 책을 선호해왔고, 만화책에 대한 향수로 웹툰에 정을 못 느끼던 나였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구글 도서에서 e북을 구매하게 되면서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책장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장점에 매력을 느꼈다. 이제 내 일상은 책, 음악, 글쓰기, 그림, 영어공부, TV.. 모든 것을 노트북 하나로 해결하는 삶으로 변해가고 있다. 2년 전 구입한 맥북은 내가 꿈꾸던 디지털 노마드적 삶에 크게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고 이 가벼운 노트북이 내 삶에 꽤나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작년 초 오랫동안 살았던 집에서 독립해 나오면서 많은 책과 옷, 짐들을 버렸다. 버리지 못하고 모든 걸 쥐고 있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사를 계기로 그 많던 물건들에 대해 허무함을 느꼈다. 한 번 보고 다시는 들춰보지 않던 수십 권의 책들, 사실 책은 내용을 사는 건데 굳이 종이로 만들어진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e북에도 마음을 열게 되었고 앞으로도 종이책은 많이 사지 않을 생각이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적극 활용하고 적은 짐으로 가볍게 살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나는 몸이 있는 사람이기에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고 몸에 걸치는 옷과 음식, 가구 같은 것들은 노트북 하나로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들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은 사실이다. 큰 집이 있어도 딱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집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게 되었다.
무게를 덜어내면 이동이 쉬워진다
많은 물건이 필요할 때에는 이사를 다니기가 여간 힘들일이 아니니 웬만하면 살던 곳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사를 다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아 내 집을 사는 것이 크게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버는 돈의 많은 부분을 집을 소유하는 데 사용하곤 했다. 집과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일은 사람을 머무르게 한다. 한 번 이동하려면 많은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사는 곳을 바꾸라는 말도 있듯이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굳어진 생각에 새로운 자극을 주곤 한다. 지속적으로 같은 곳에 살면 변화의 여지가 적고 가치관도 그대로 고여있는 삶이 될 확률이 높다.
요즘 나는 굳이 비싼 집값을 부담하며 서울에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기울고 있다. 노트북 하나 들고 외국에 나가서 작업을 해도 되고 서울보다 공기가 좋은 지방에 가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예전에는 회사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문제가 되지 않고 문화생활과 쇼핑 등 많은 부분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질 테고. 또 가상현실이 더욱 발전하면 물리적 공간의 개념도 지금보다 더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을까.
아직 젊은 나이에 목돈이 있다면 집을 사거나 전세금으로 묶어두는 것보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하는 것에 쓰는 편이 훨씬 미래를 위한 투자로도 좋은 것 같다.
재작년부터 1년 동안 에어비앤비 호스트로서 운영을 한 적이 있다. 부모님 소유의 원룸을 에어비앤비에 올리고 직접 청소를 하며 게스트를 받았고 역 앞은 아니었지만 월 20일 이상은 예약이 찼다. 꽤 오래전에 로맨틱 홀리데이라는 영화를 보고 다른 지역의 집과 서로 바꿔서 머무는 콘셉트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에어비앤비를 처음 알게 된 후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다른 이의 집에 살아보는 콘셉트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설레었다. 마침 기회가 되어 호스트도 하게 됐었는데 관리를 하는 일의 현실에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세상이 확실히 변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큰 호텔이나 건물을 소유하지 않아도 개개인이 숙소를 제공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기존 대기업에 집약되어 있던 기회와 돈이 새롭게 재편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더불어 공간의 개념이 소유에서 공유로 변하고 있음을, 이동하는 일이 조금 더 가벼워질 것 임을 느꼈다. 온라인에서 오고 가는 많은 연결들, 실제로도 이동이 쉬워지는 특성이 합쳐져 기존 정착의 개념이 달라질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영어와 외국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어차피 외국에 이민을 가지 않는 이상 한국에 정착해서 살 것이고 한국어만 해도 지장은 없다는 생각에 영어를 게을리 해왔다. 하지만 이동이 잦아지고 온라인 상에서는 이미 국경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영어를 하는 만큼 자유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가볍게, 자유롭게 사는 삶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를 다닐 때도 늘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개인 짐을 거의 두지 않고 다녔다. 그래서 늘 퇴사할 때 가져갈 짐이 거의 없었고 지금 사는 집에서도 부피가 있는 가구나 물건은 거의 없다. 마치 언제든 이 곳을 떠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몸에 배어 있다. 안주하지 않고 더 발전하고 변화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만 정착했을 때의 안정감은 확실히 없다. 아무튼 지금은 정착보다는 가능성을 찾아, 이곳저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기존의 단기 여행보다 길게 여행인 듯 삶인 듯 조금은 불안하지만 설렘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