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가장 좋은 순간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역시 공항에 도착해서 출발할 때까지의 2시간이다.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닌데 인천공항에 가서 커피를 마신 적도 있을 만큼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기운은 특별하다. 아마도 먼 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와 설렘의 에너지가 공기 중에 떠다니며 서로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이 설렘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드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겁이 없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 설렘이라는 감정이 가진 큰 힘 덕분에 많은 곳을 여행했고 원하는 방식의 삶을 살고 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시간은 바로 항공권을 예약하는 순간이었다. 일단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의 관점에서 유럽 왕복 항공권을 끊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는 직항이 없었기에 경유지에서의 체류시간이 첫 번째 중요사항이었고 부다페스트 도착시간이 너무 늦으면 안 된다는 점이 두 번째였다. 아에로 플로트에서 적절한 시간대의 항공편을 발견했고 장기간 비행인 점을 고려해서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으로 예약을 했다. 처음으로 이코노미 외의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이 더 설레었지만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건 경유시간이 1시간 40분이라는 점이다. 아에로플로트가 지연 출발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예약을 변경해야 되나 고민했지만 행운이 내 편이 되어주리라 믿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출발 당일이 되어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고 시간이 빠듯해서 체크인을 하고 곧장 게이트를 찾아갔다.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공항의 기운을 느끼며 바삐 걸어 121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올라 자리를 확인했고 여유 있는 좌석이 마음에 꼭 들었다.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은 것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고 이제 제시간에 무사히 출발하는 일만 남았다. 비행기는 30분 정도 지연 출발했고 이 정도면 경유에 문제는 없어 보여 한시름 놓았다. 경유지인 모스크바까지 9시간, 참 길지만 비행기를 타면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모르겠다. 멋진 러시아 남자 승무원이 가져다주는 기내식도 좋았고 영화도 보면서 노닥거리니 시간이 금세 갔다. 혼자 놀기의 달인인 나는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중간에 창 밖을 보니 새하얀 구름이 쭉 펼쳐져 있었고 마치 눈이 쌓인 평원을 보는 것 같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벌써 12번째 여행이고 익숙해질 만도 한 상공의 풍경은 여전히 들뜬 마음을 안겨주었고 어쩌면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공항에 30분 늦게 도착을 했지만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고 짐 검색대를 지나 게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전광판에 내 비행 편이 나오지 않아 잠시 당황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으로 문자가 하나 왔다. "Dear passenger! please proceed to gate 39" 국외 발신으로 아에로플로트에서 보내온 문자였다. 당황하던 나는 구세주를 만난 듯 기뻐하며 게이트로 열심히 달려갔다. 예전에는 이런 서비스가 없었는데 이렇게 문자를 보내주니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며 무사히 탑승을 했다.
3시간의 비행 끝에 저녁 8시쯤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했다. 긴 비행이 피곤했지만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다는 흥분과 약간의 두려움에 피곤함도 잊어버렸다. 입국심사는 여권만 확인하고 바로 통과였고 짐도 맡기지 않았기에 10분 만에 공항을 나올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 공항은 인천공항에 비하면 정말 작아서 길을 헤맬 것도 없이 바로 버스를 타는 출구를 발견했다. 시내 중심까지 한 번에 가는 100E번 버스가 30분마다 있어서 그것을 타기로 했다. 현금으로 900 포린트를 기사분에게 바로 내고 표를 샀는데 푸근한 미소로 인사를 해주어 헝가리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좋게 느껴졌다.
시내까지 가는 또 다른 방법으로 miniBUD(https://www.minibud.hu/en/)라는 셔틀 서비스가 있다. 공항에서 픽업해서 호텔이나 숙소 앞까지 데려다준다는 점이 메리트가 있지만 시간을 미리 예약해야 된다는 점과 다른 사람들도 기다려서 함께 탄다는 점 때문에 정시 간에 출발하는 버스를 선택했다. 지연 출발에 대한 부담으로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는 시간이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가 Deak square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인 거리에 있었으므로 100E번 버스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버스를 타고 앉아서 갈 수 있었고 Deak역에 내린 시간은 밤 9시 10분경. 숙소까지 가는 길을 미리 구글맵에서 거리뷰로 보고 시뮬레이션했었기 때문에 헤매지는 않았고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거리는 깨끗했고 다른 유럽에 비해 노숙자도 거의 없었다. 아직 9월의 따뜻한 밤공기를 맞으며 조금은 긴장된 상태로 무사히 숙소 앞까지 도착했고 한국에서 사 온 유심을 끼워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호스트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