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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13. 2019

책. 나는 생겨먹은 대로 산다

제목 한 번 시원하네

느슨한 여유가 느껴지는 제목에 확 꽂혀서 보게 된 책이다. 성공을 부추기는 처세술이나 자기 계발서가 범람하는 사이에서 '다 X 까고 그냥 내 멋대로 살래'라는 식의 책이 있으면 참 반갑다. 30 중반을 향하니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사는 법'에 더 관심이 많아진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강요하는 가치관에 휘둘리고 충분히 스트레스받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다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부품 1,2로 살아가게 될 뿐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책장에 꽂혀있던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도 참 좋아한다.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아나가는 줄무늬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의 이야기. 아무튼 이 '나는 생겨먹은 대로 산다'를 보면서 공감되는 부분들도 많았고 원하지 않는 것들을 중단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도를 높여주는지 경험하고 있다. 번역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볼만한 책이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내 인생 멋지게


우리는 잘못된 삶과 올바른 삶이라는 간격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올바른 삶'이란 특이한 허상이다. 사람들이 올바른 삶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삶은 정작 그들에게서 뒤로 물러나고 만다. 확고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해 운동을 시작하거나, 계속 머릿속에서만 구상하던 글쓰기를 시작하거나, 아니면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어느 섬을 찾아가 그곳에 혼자 앉아있게 될 때면 돌연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이런 것들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어떻게 이런 일들이 내 인생의 중요한 목표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걸까?'라는 의문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의 마음속으로부터 소위 '잘못된 삶'이야말로 진짜 삶이라는 생각이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런 삶은 혼란스럽고 계획되지 않았으며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바로 지금 상태의 그대로의 자신과 미래에 될 가능성이 있는 자신 사이의 간격을 메꾸는 일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해명의 예술가가 되고 이야기꾼이 되어 우리가 어떻게 현 상태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곧 현 상태에서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해명하곤 한다.
p24


무엇을 찾아 헤매지 않으리.

한 4년 전부터 페이스북은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에는 인스타그램도 자주 들어가지 않는다. SNS는 좋은 기능도 많지만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지금 당장 무언가 시작하고 배우지 않는 나는 한심한 사람'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하루에 커피 한잔 값이면 6개월이면 영어의 달인이 된다는 유튜브 광고들을 보면서 그것을 하지 않는 내가 게으르게 느껴지고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얼마 못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든다. 애초에 부추김에 넘어가서 시작한 것이니까.


내가 가진 것, 내 특성 그대로 살아야지. 설득에 넘어가 억지로 영어공부를 시작하거나 불안한 마음에 개발을 배우는 대신 그냥 내가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던 일들에 집중하련다. 난 성공한 삶보다 나를 괴롭히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아마도 먼 훗날 나이가 들어 돌아보면 성공하지 못한 것보다 나를 잃어버린 것이 더 후회가 될 것 같으니까.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나가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특히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 인식하고 평생 이러한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심한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거나, 우리가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었을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이야기가 우리를 결코 자유롭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진심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를 중단하거나 자기에게 맞지 않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재미없는 인문학 강좌를 포기하거나 힘든 어학 공부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물론이다. 


올바른 삶이라는 허상. 그 옳음이라는 것은 대부분 사회에서 옳다고 말하는 것이거나 '나는 이렇게 돼야만 해'라는 당위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한결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그런 일에 흥미 없어

우리는 왜 다른 사람으로부터 요구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변명해야 하는 걸까? 예를 들면 일을 더 많이 할 거라는 기대에도 부응해야 하고 또 더 많은 사랑을 요구하는 파트너의 기대에도 부응해야 한다. "그런 건 재미없어요"라고 말하거나 "그건 나하고는 상관없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의 과거 속으로 파고들어가 도덕적으로 우리의 부담을 덜어줄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쓰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즉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의욕이 없고 나태한 거야. 그리고 나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은 우리 부모 잘못이야. 그들은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충분히 칭찬을 해주지 않았으니까."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식의 변명으로 사람들은 진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스스로 차단하고 만다. p32


뜨끔한 구절이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나? 2년 전에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인데 부담을 느끼면 과거로 돌아가 부모탓을 하게 되는 부분, 내가 이랬다. 원하지 않는 과도한 요구들에 거절하지 못하고 다 짊어진 채로 헥헥대다가 지쳐 나가떨어지고는 내가 이런 성격이 된 것은 결국 엄격한 아빠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맞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내 태도를 바꾸고 원치 않는 일에 "No"라고 말하는 것도 내 몫이다. 


삶에서 끊임없이 최고의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삶 어딘가가 잘못되어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들은 삶을 하나의 도전으로 바라보면서 즐겁게 임하는데 자신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오로지 음식을 인정사정없이 입안으로 마구 쑤셔 넣고 소파 위에 누워있기를 좋아할 뿐이여,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의지 따위는 전혀 없고 예술이나 문학은 물론 다른 어떤 것에도 흥미가 없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의 스트레스로 인식한다. 즉, 자신의 순수한 욕구와 소망에 대해 불신하며, 스스로가 그런 것들을 약점과 오류로 만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은 "나는 그런 일에 흥미 없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오히려 스스로 성격상의 오류가 있다고 꾸며내고 인정해버린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p33


내가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내가 나를 풀어주면 마음의 응어리가 상당 부분 풀어지고 다른 사람을 보면서 평가, 판단하는 것도 연해진다는 점이다. 나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그냥 자유롭게 두니 타인을 볼 때 불편한 마음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결국 타인에 대해 불만을 갖고 타인의 게으름을 한심하게 보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그런 부분을 억압하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사회가 정한 특정한 기준에 부응하지 못할 때 거부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두려움은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면서 줄일 수 있다. 즉, 다음번에 사람들이 당신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그냥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 "나는 그런 것엔 흥미 없어."라든가 "네가 직접 해봐." 또한 "좋은 생각이지만 나한테는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야." 이처럼 당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거절을 하라. p35
자신을 극복하려는 모든 시도는 뭔가 비극성을 띄고 있다는 것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잘 알려진 주제다. 그리고 이런 것을 다룰 책과 영화의 결말이 어떤지는 아주 분명하다. 주인공은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지닌 결점이 아니라, 오히려 평생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소모했던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p36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요즘 운동은 안 하냐는 질문에 "난 운동 싫어해"라고 말했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 헬스를 하면서 자신을 가꾸는 사람이 멋지고 아름답다는 선입견을 의식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척했던 것을 벗어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도 된다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모든 기대와 요구들을 받아들이며 사느라 에너지 소모를 꽤 많이 했다. 




내 성공의 기준은 나로 살았는지. 


관심도 없는 일을 함께 하자고 하는 주변인들에게 말하자.

"나는 그런 일에 흥미 없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채찍질하려는 사람들에게 말하자. 

"그건 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야" 


내가 이 책에서 얻은 핵심은 이거였다. 그냥 나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거절해야 한다. 누군가의 요구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하라는 다양한 부추김의 신호들, 이를테면 유튜브의 자기 계발 영상과 수많은 광고들, 배워야 산다는 각종 교육 홍보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부추기는 콘텐츠 들을 무조건 받아들이다 보면 무언가 하지 않고 있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내성적이어도 괜찮고 수학을 못해도 되고 영어를 못해도 된다. 수영을 못하면 어떻고 여행에 흥미가 없고 집에 틀어 박혀있는 게 좋으면 어떤가. 꾸미지 않아도 되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를 풀어놓으련다. 애초에 사회에서 옳다고 하는 것들과 기준들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억지로 해왔던 모든 것을 중단하고 있는 그대로 내가 끌리는 것, 자연스러운 것만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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