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명의 시대를 살면서
항상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변화가 싫은 마음, 새로운 툴을 학습해야 하는 귀찮음, 사람이 하는 일이 줄어드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긍정적인 마음보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더 컸다.
캔바같은 혁신적인 디자인 툴이 나오는 걸 보면서 예전에 수동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하던 것을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디자이너로서 일하던 내 커리어도 작아지는 것 같아 싫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디자인하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전체 시장 자체가 커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제 기업이 아닌 개인도 자신을 브랜딩 하며 SNS를 세련된 디자인으로 꾸밀 수 있다. 회사에 다니지 않고도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직장의 노예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
소수의 특권이었던 것을 다수가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 기술 발전의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즉 세상이 조금 더 민주화되는 일 아닐까.
나는 오랫동안 디자이너를 내 정체성처럼 생각해왔다.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믿었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일이 되면서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누구나 더 쉽게 무엇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다. 갑갑함을 느꼈던 많은 사람들에게 기술이 해방구를 열어 준 것이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 마차는 아주 소수의 계층만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동차가 만들어지며 관련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대량 생산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편리를 누리고 있다.
온라인화 되는 일은 많은 물리적인 낭비를 줄여주는 이점이 크다. 직접 대면하고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그것도 고정관념 아닌지 모르겠다. 불필요한 회식이나 위계서열에 따라 눈치를 보는 일, 남에게 보이기 위한 치장이나 허영 같은 건 온라인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어진다. 또 종이 낭비나 쓰레기 생산도 줄어들며 어디에서 일해도 상관없기 때문에 굳이 비싼 도심에 살 필요도 없어진다.
기술은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는 분명 더 나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소수만 누리던 것을 다수가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조용한 혁명이 아닌지.
기술이 내 직업을 앗아간다는 생각은 나만이 가진 능력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을 낳았다. 그만큼 내가 '나'만의 능력이나 차별화되는 것에 집착하고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나도 특권의식을 갖고 내가 쥔 것을 놓지 않으려 욕심내는 옹졸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 마음과 상관없이 세상은 다수에게 더 편리한 방향으로, 또 더 평등한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그건 분명 좋은 일, 혁신적인 일이며 결국은 나도 그 수혜를 누리면서 이전보다 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모두가 더 쉽게 기술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자유롭게 일하는 세상이 되는 것에 감사하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적대감을 갖기보다는 세상을 더 평등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기술이라면 적극 환영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