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liz Ano Neuvo! 사막을 지나 도착한 페루
12월 30일에 에콰도르에서 출발해서, 눈을 뜬 2015년 마지막 날의 시작은 페루의 버스 안이었다.
에콰도르 과야킬에서 페루 리마까지의 이동하는 버스로, 대략 28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였다.
하루 하고도 4시간이 더 걸리는 버스다. 분단된 반도 국가에 사는 나에게는 버스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건 생소한 일인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사막
밤새 상영되는 액션 영화 덕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버스에서 주는 음식도 입에 잘 맞지 않아 꽤나 피곤한 상태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은 장면을 만나게 되었다.
사막이었다. 2015년 여름, 아이슬란드에서 드넓은 이끼 밭을 처음 만났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빙하 위를 걸어보기도 했고,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규모의 폭포는 물론, 화산에 오로라까지 보고 온 상태라 나는 자연의 놀라움은 '이미' 꽤나 경험했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자만이었다. 이런 모래사막은 처음 봤다.
물론 짧은 미국 서부 여행에서 사막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가도 가도 모래만 펼쳐져있는 도로는 처음이었다.
피곤함은 물론 버스에서의 시끄러운 소리마저도 갑자기 Mute 가 되는듯한 정도의 충격. 여전히 액션 영화가 플레이 중인 시끄러운 버스 안이었는데 사막의 고요함이 버스 안의 소리를 먹은 것 같았다.
이번 여행 스케줄에 페루의 사막에서 샌드 보딩을 할 계획이 있었지만, 리마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막이 나타날 줄 몰랐다.
한참을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갑자기 바다가 나타났다. 한쪽엔 모래, 한쪽엔 바다가 펼쳐졌다.
바람에 날릴 정도로 고운 입자의 모래로 이루어진 언덕 같은데, 그 언덕 중간에 어떻게 도로를 만들었는지, 또 이 도로 옆으로 쌓여있는 모래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도로를 덮을 것 같은데..
심지어 그 모래 언덕 중간중간에 터널도 있다.
아슬아슬, 신기한 기분으로 리마에 도착했다.
Feliz Ano Neuvo!
리마에 도착해보니 2015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요일의 감각이 사라질 때가 꽤 있는데, 나의 경우엔 특히 휴일이나 기념일의 감각도 무뎌졌다.
그래도 2015년의 마지막 날은 그냥 보낼 수가 없는 것 아닌가. 무사히 페루에 도착한 것과 2016년을 반기고자 병맥주 하나씩 들고 숙소가 있었던 리마 플로레스의 대형 쇼핑몰 근처의 잔디밭에 앉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갑자기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와!!! 전혀 몰랐었는데!!
갑자기 너무 신났다. 씻지도 못한 채 28시간이 지난 상태라는 피곤함도 잊은 채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불꽃들을 쳐다봤다.
2015년을 맞이할 때만 하더라도, 2015년의 마지막을 페루에서 보내게 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회사를 그만둘지도 몰랐고,
회사를 그만두고 스페인어학원을 다니게 될 줄도 몰랐고,
미국, 아니 심지어 남미 대륙에서 이렇게 맥주를 마시게 될 줄도 몰랐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도 몰랐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2015년이었다. 하, 회사를 그만두게 될 줄이야.
주마등처럼 나의 2015년이 스쳐 지나갔다.
어서 와, 2016년!
나도 여행지에서 새해를 맞는 일은 처음이었다. 사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특별히 다르진 않을 수도 있지만 새해라는 것은 꼭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도 특별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 페루에서도 New Year는 특별한 것이었다.
잠깐 그곳을 스쳐가는 여행자에게는 박물관과 같은 관광지가 문을 닫는 날일지언정, 현지인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기에 여행 속에서도 특별한 날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