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른 집에서 받아 온 것은 아버지가 쓰지 않는 LED 시계였다. 으레 옛날 아버지들이 지하철에서 잡다한 것을 사 오듯 우리 아버지도 사소한 것을 사는 일에 예외는 없었다. 신기할 것 같아서, 혹은 요즘 유행하는 것 같아서 얼마 쓰지도 않을 것을 사 오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내게 늘 불평을 늘어놓았다. '쓰지도 않을 거 뭐하러 사 온다니. 이해가 안 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뭐 비싼 거 사 오는 것도 아닌데 뭘.' 하고 대꾸할 뿐이었다. 속으로는 쓸모없는 것을 사 온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아버지 나름대로의 소확행일까 싶어서.
아무튼 집에서 받아온 LED 시계는 요즘 집 꾸미기 사이트에서 유행하는 형태의 시계였다. 하지만 쓰던 것이라 설명서도 리모컨 같은 것도 없이 mode, up, down 버튼만 있었다. 이리저리 만져서 시간은 맞췄지만 문제는 알람이었다. off를 눌러놔도 알람은 설정시간이 쉼 없이 울어댔다. 사실 본가에서 파양 당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무소음 led시계라 사 온 것이 오히려 알람 때문에 가장 큰 소음 덩어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알람 소리를 몇 번 듣고 깬 뒤로 시계는 전원선이 빠진 채로 벽에 걸린 채로 잊혀갔다.
그 소음문제는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이걸 버려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중 어릴 적 탔던 자전거가 떠올랐다.
버튼을 누르면 여러 소리로 반짝이며 울리던 자전거. 또래애들 사이에서는 유행했던 자전거인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친구들과 달리면서 놀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고장 나면서 쪼그라드는 목소리처럼 시들시들한 소리가 나자 신나던 멜로디는 듣기 싫은 소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소리가 나는 뚜껑을 열어 소리가 나는 스피커선을 잘라버렸다. 그 뒤로 자전거는 아무 소리 없이 빛만 반짝였다.
나중에 안 사실은 소리가 그렇게 난 이유가 고장 났던 것이 아니라 건전지가 닳아서였지만 그때는 이미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어져버렸다. 그 뒤로 조금 더 자라서인지 아무도 소리 나고 반짝이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고, 또래들은 소리가 나는 헤드 대신 작게 울리는 벨이 달린 '어른 자전거'를 탔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 4시 30분이 되자 테스트하기 위해 1분 간격으로 맞춰놓았던 알람이 울렸다. 나는 down버튼을 눌러 알람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