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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 May 20. 2020

나만은 나를 나로 바라보기를

나에게 행했던 폭력

 얼마 전 방에 꽂혀있던 소설책을 하나 꺼내 읽었다. 황정은 작가님의 장편소설, <의 그림자>

고등학교 때 그냥 제목에 이끌려서 샀던 책이다. 앞에 몇 장을 읽어보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 당시 방 책장에 꽂아두었다. 세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본가에 몇 년 동안 읽히지 않고 꽂혀있던 책. 왜일까.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책이 눈에 띄었다. 어두우면서도 따뜻한 요소들이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철거될 위기에 처한 전자상가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매우 담담하게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지금의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이 있다.


가마가 말이죠,라고 무재 씨가 말했다. 전부 다르게 생겼대요. 언젠가 책에서 봤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생겼대요. 그렇대요? 그런데도 그걸 전부 가마,라고 부르니까, 편리하기는 해도, 가마의 처지로 보자면 상당한 폭력인 거죠.                                                                             - <百의 그림자> 가마와 가마와 가마는 아닌 것 中


 가마가 왠지 나와 같은 처지라고 느껴졌다.

나는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이다. 일명 '취준생'. 문과에서 가장 많은 학생 수를 보유하고 있는 경영학과에 소속되어 있다. 우리나라 경영학과 학생들만 모아둬도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닐까 싶다. 그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나다. 고등학교 때부터 경영학과에 가고 싶어 '입시생'으로서 입시 준비를 하였고, 대학에 와서도 취업을 대비해 학회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대학생으로서 열심히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나는 '취준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작년 6개월 간 마케팅팀 인턴으로 회사를 다녔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자기 계발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인턴이라고는 나 혼자인 곳에서 바쁘게 업무들을 처리하다 보니 퇴근 후 삶이라고는 그저 집에 가자마자 잠에 드는 것 밖에 없었다. 모두가 똑같이 힘든데 고작 인턴이 힘들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비웃을까 힘든 내색을 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이었고 운 좋게 얻은 기회였기에 투정을 하면 복에 겨운 소리를 하는 거라고 할까 무서웠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어떻게 생긴 기회인데 더 잘해야 해.' 라며 나를 채찍질했고, 더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그래서였을까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갑자기 연휴 3일 내내 열이 40도였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회사 가야 하는데, 어떡하지?'였다. '아니야, 단순히 감기몸살일 거야.'라 생각하며 열이 펄펄 끓는 밤 내내 혼자 물티슈로 온 몸을 닦았다. 하지만 몸이 내 맘 같지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자꾸만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그렇게 아픈 와중에도 꿈에서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은 회사에 이야기하고 입원을 해야만 했다. 병명은 급성 신우신염. 내 몸을 그만 혹사시키라고 병이 갑자기 찾아온 것일까.


 이 일 때문인지 빨리 취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분명 일을 하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는 있었지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겐 그런 시간들이 필요했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 이후에 나의 직업을 찾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그 시간을 가지길 방해하는 것만 같다. 4학년이면 자소서를 쓰고,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주위에 벌써 취업한 친구들, 취업준비를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 모습에 점점 초조해진다. 그런 시기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아직 나는 나도 잘 모르는데, 지금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취업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소설 <의 그림자>의 뒤편, '가마'에 대한 대화의 해설을 보았다. 사람마다 다 다른 모양인 가마를 가마라고 부르는 것이 가마의 처지에서 보자면 폭력적이지 않냐는 표현이 '동일성의 사유'에 대한 작가의 항의라고 해석되어있었다. '동일성의 사유'개별적인 것들의 개별성을 묵살하고 다양한 개체를 동일한 것으로 일반화하는 사유를 뜻한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도 쉽게 일반화를 시키고 있진 않는가. 우리는 외모, 성격, 취향, 삶의 형태까지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다.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방식도, 속도도, 형태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자꾸 '취준생'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턴을 하던 그때도 '인턴이니깐 힘든 내색도 하면 안 되고, 더욱더 열심히 해야 해.' 라며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열심히에서 더 열심히, 더 열심히에서 더욱더 열심히. 그 끝이 어딜까. 계속해서 나를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눈과 귀를 막고 살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주위의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겠지. 하지만 또다시 나 스스로를 동일성의 사유로 괴롭히려고 할 때는 지금 쓴 이 글을 다시 읽어야겠다.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나로 바라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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