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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말 Dec 06. 2021

[차별] <이터널스>를 통해 부각된 우리의 편견과 차별

<이터널스>가 MCU 최악의 작품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는 '정당'한가?

 

<이터널스>는 왜 마블스럽지 않은 작품이었는가?

얼마 전, 영화 <이터널스>를 극장에서 보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24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이젠 앞의 영화들을 보지 않으면 따라가기조차 힘든 마니아들만의 세상이 되어버린 ‘거대한 세계관, MCU’가 되어버렸지만, 다행히 <이터널스>는 앞 23개의 작품을 굳이 다 보지 않아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MCU에서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설정 용어들이 여러 번 언급되긴 하지만 이것이 작품의 스토리를 전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난해한 요소도 없었거니와 그러한 용어들이 작품 전체에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터널스>를 두고 ‘마블’ 스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비판하는 예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 <이터널스>는 확실히 이전 MCU의 작품들과는 분위기나 스토리의 구성도에서 큰 차이점을 보인다. 호흡이 길고 사건 보다는 인물에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수도 많다 보니 그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 작품의 초반부가 대부분 할애되지만, 캐릭터들의 설정 하나하나가 특별하고 참신하여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서 나는)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터널스>는 ‘MCU 최악의 영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앞서 내가 언급한 캐릭터의 ‘구성’도 한몫을 하고 있는 거 같아 씁쓸한 기분도 든다.


<이터널스>는 개봉 될 때부터 논란이 있던 작품이었다. 우선, 감독 클로이 자오는 <노 매드 랜드>라는 작품을 통해 오스카 영화제에서 시상을 받은 적이 있는 아주 역량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가 단지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에 ‘차이나 머니’가 묻어있을 것이라고 비꼬는 이들이 많았다. 우스운 것은 클로이 자오는 중국 공산당을 비판한 바 있어, 중국에서는 아예 그녀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물론, <이터널스> 자체가 중국에선 상영 금지가 되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역시 한국팬들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실, 이러한 논란은 MCU의 또 다른 작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에서도 똑같이 있었다. 샹치라는 히어로는 쿵푸라는 무술의 고수이고, 그렇다 보니 작품 전체에 중국풍이 짙게 깔려있을 수밖에 없다. 샹치를 맡은 시무 리우도 중국계 미국인이니까.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중국에선 상영 금지가 되었다. 어떤 장면 중 하나가 ‘중국이 소수 민족을 탄압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공산당이 제 발 저린 셈 같지만 말이다. 게다가, 주연 중 한 명인 양조위는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홍콩 배우다. 그런데도 <샹치>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개봉 전부터 중국 공산당을 옹호하고,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한 작품이 되었고, 개봉된 후에도 보지도 않고 작품을 비난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 작품을 보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중국이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감은 중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 사는 조선족을 향한 혐오로 이어지며 사회적인 배척이 더욱 커지고 있다. 자신의 편견으로 개개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버리고 혐오해버린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쉽고, 속 편하기 때문이다.


<이터널스>는 어땠을까. 우선, 감독이 중국계 미국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기대를 품었다. 왜냐하면, 마동석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었으니까. ‘마블리’라는 별명을 가졌을 만큼 많은 한국 팬들이 애정하는 마동석을 할리우드, 그것도 MCU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한국 팬들의 기대감을 부풀게 하였고 샹치 때와는 다르게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갔다. 앞서 언급하였듯 <이터널스>는 지난 MCU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이전 마블 작품을 보지 않아도 <이터널스>를 볼 수 있는 이유는 어딘지 모르게 MCU의 세계관과 동떨어져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는 느낌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 자체가 한국 내 MCU 마니아들이 실망할 수 있는 요소는 되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토리가 재미가 없었거나, 호흡이 길고, 액션 장면이 진부하여 작품의 내적인 요소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순 있다. 이는 정당한 비평이며, 관객들마다 취향은 다를 수 있으니 이를 두고 비판할 순 없다. 하지만 <이터널스>가 받는 비판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터널스가 가진 '다양함'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터널스>의 캐릭터를 구성하는데 많이 고민하였을 것이다. 보통, 할리우드에서 묘사하는 히어로의 모습은 백인 성인 남성이다. MCU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어벤져스 1>에서 구성원 7명 중 5명이 백인 성인 남성이다.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캐릭터는 백인 여성인 블랙위도우와 흑인 남성인 닉 푸리 뿐이었다. 물론, <이터널스>에서도 역할 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카리스 역시 백인 남성이지만, 그와 함께 <이터널스>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데 절대 없어선 안 되는 세르시는 아시아계 여성이다. <샹치>가 개봉되었을 때 MCU에선 MCU 최초의 아시아 히어로라고 떠들어 댔지만 어찌 보면 세르시가 가진 상징 자체가 훨씬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여튼 MCU는 그리고 우리는 모두 향후 MCU의 아시안 히어로를 언급할 때 샹치 뿐만 아니라 세르시 역시 있음을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밖에도 길가메쉬의 역할을 맡았던 우리에게 익숙한 마동석 배우도 역시 황인 남성이다. 킨고 역할을 맡은 쿠마일 난지아니는 파키스탄계 배우이다. 게다가 <이터널스>의 캐릭터들은 인종적으로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계층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기계를 잘 다루는 파스토스는 동성애자이고, 스프라이트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마키리는 청각 장애인이어서 대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수화를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테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 취약자로 묘사가 된다. 하지만 이들 모두 히어로다. 우리는 흔히들 신체가 건강한 백인 남성만이 세상을 지키는 히어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외부 매체로부터 꾸준히 주입 당한 결과라고 한다면? 사실은 백인이 아니어도, 성인이 아니어도, 이성애자가 아니어도 히어로가 된들 이상한 것은 없다.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편견이고 차별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차별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창비 출판사에서 나온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선 사람들은 ‘차별’을 반대한다고 한다. 사람들의 인성은 선하므로 차별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는 차별은 정당하고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동반되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에서 잘 적응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이 이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과 대립하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이 사회가 너무나 좋은데, 왜 당신은 이 사회를 비판하는가? 그건 당신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이 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우리는 퀴어 축제를 불결하다고 느끼고, 장애인의 시위 현장을 보면 불만 많은 사람이라고 일축해버린다. <이터널스>를 본 관객들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왜 작품에 동성애자가 나와야 하고, 청각 장애인이 나와야 하는가? 정치적 올바름이 스토리를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왜 히어로물에 꼭 백인이 나와야 하는가? 남성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극장에서 <이터널스>를 보다 관객석이 웅성거렸던 순간을 기억한다. 파스토스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키스하는 장면이었다. 키스하는 장면이 도대체 왜?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이 장면은 남성과 여성이 키스하는 장면이 아니었고, 남성과 남성이 키스하는 장면이었을 뿐이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 다만 우리는 <이터널스>가 MCU 최악의 영화로 분류되는 이유 중 하나로 이 장면이 언급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음에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차별은 부끄러운 행위다. 그러나 현 사회는 차별하는 사람이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보다 당당할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차별을 더 당당히 반대하기 위해서 이런 글을 남겨본다. <이터널스>를 보고 ‘PC가 묻었다’ ‘게이가 나온다’ 따위의 이야기가 아닌, 순수하게 작품만을 보고 캐릭터의 서사와 스토리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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