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시대가 오길 바라며 부치는글
지난 11월 23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끔찍한 독재자 중 한 명인 전두환이 아무런 사죄의 말도 없이 사망했다. 1979년 10.26 사태로 인해 또 다른 독재자 박정희가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김재규 중앙 정보부장에게 암살을 당하면서 전두환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사반란을 일으켜 최고 권력을 차지해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다. 1980년에는 광주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잔인하게 찍어 눌렀으며, 1987년에도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려는 듯하였으나 전두환 정권에 대한 범국민적인 반대 여론을 못 이겨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최고 권력 자리에 물러나면서 대한민국엔 직선제가 도입이 되었고 국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바뀌는 듯했다.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 특별법을 통해 그를 전격 구속하여, 쿠데타로 인한 정권 찬탈, 반란수괴, 상관살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그리고 대통령 재직 시절 뇌물 수수 등의 죄를 따져 물었다. 그에겐 반란수괴와 부패 혐의로 1심에선 사형, 2심에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그가 수감소에서 형장의 이슬이 되는 일은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실책으로 전두환은 제대로 된 사죄는커녕, 여전히 그에겐 956억 원 규모의 미납한 추징금이 남아있다.
1997년, 그가 사면복권이 되는 순간 많은 이들이 전두환으로부터 사과를 받을 권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80년대의 광주, 87년대의 서울,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시간대와 장소에서 한 독재자가 일으킨 비극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다쳤다. 그러나 세상을 억울하게 영영 떠나버린 이들도, 세상에 남아 평생 고통을 삭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도 이젠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는 그런 기회도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왜, 대한민국 정부는 억울한 피해자가 아닌 반성 않는 잔인한 가해자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한 작은 섬, 선감도는 한눈에 바다가 보이고 꽃이 많은 아주 예쁜 섬이다. 하지만 이런 예쁜 섬에는 곳곳에 잔인한 세월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이곳 선감도에 소년 감화 시설이라는 명분으로 독립운동가의 후손, 범죄자, 부랑자, 장애인 소년들을 집단 수용하고 강제노역과 학대를 자행한다. 물론, 일제가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은 어찌 보면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광복이 된 후에도 우리나라 정부가 대한민국의 소년들을 잡아들여 똑같은 짓을 벌였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필자인 나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쉽게 납득할지도 모르겠다.
해방 이후에는 경기도에서 이 섬을 인수하여 1955년부터 1982년까지 국가 부랑아 정책에 따라 선감학원이라는 이름 아래 강제 수용소로 운영한다. 일제 강점기와 비슷하게 정치범의 후손, 장애인, 정확한 신원 확인이 되지 않는 아동을 데려와 강제노역과 학대를 자행하였다. 아이들은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에 식사는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고 구타와 폭행, 성폭행을 당했으며 이를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려 했던 소년들도 바다에 빠져 익사하거나 발각되어 매질을 당해 결국 목숨을 잃는 선택지가 다였다.
이들 역시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소년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가거나, 탈출에 성공한 이들도 그때의 후유증과 트라우마, 주위로부터의 멸시, 가난 속에서 살아가다 그렇게 역시 세상을 떠나갔다. 하지만, 우리는 선감도의 '가해자'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고자 하는 일부 개정 법률안조차 '과거의 역사를 파헤치는 것은 부끄럽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사례는 바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다만, 우리가 '위안부 강제동원'이라는 피해의 역사가 있으니, 우리 역시 '베트남 민간학살 피해자' 분들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접근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렇게 당한 적이 있으니 우리가 일으킨 가해의 역사를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 '응당' '당연히'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사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은 민간인 70여 명을 학살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응우옌 씨가 그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렸고 정확한 진상 규명과 함께 정당한 피해보상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결과는 위에서 언급된 두 가지의 사례와 비슷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과 없이 '베트남 측이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거나, '공식 문서상 학살의 증거가 없다'라는 논리로 사죄라는 방식에서 회피하려고만 하고 있다.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대한민국 정부와 기득권층을 정확하게 꼬집는 말이기도 하다.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독재자 중 한 명이었던 자를 권력에서 물러나게 만들었고, 그가 빼앗아갔던 피해자들의 삶의 행복과 의미를 조금이나마 돌려줄 수 있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사면복권'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분과 함께 피해자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그 권리를 영영 빼앗기고 말았다.
선감도, 베트남 민간 학살 그리고 위안부 강제동원의 피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과를 받기는커녕, 잔인한 시대 속에서 받았던 피해 사실만이 그들의 가슴속에 잔인하게 각인되어 간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는 대한민국 정부와 기득권층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방관이 한 몫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가해자가 당당하고, 피해자가 눈물을 흘려야 하는 시대가 반복되어야 할까. 지나간 기회는 다시금 돌아오지 않는다. 역사 속에 아로새겨진 수많은 실책과 잘못은 분명 우리에게 그대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