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말 Sep 24. 2023

용기 있는 사람들 : 침묵과 묵인의 바탕 속에서

존 F. 케네디의 패권전략에 숨겨진 '용기 있는 사람들'의 진짜 의미

한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 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보수정권이 집권하는 경우 한-일관계는 비교적 우호적으로 바뀌는 양상이 있지만, 이번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관계는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살얼음판 같던 두 나라의 관계는 한쪽의 ‘눈감아주기 식’ 외교로 끈끈해지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이 본격적으로 전략적인 파트너가 되는데 크게 일조한 것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있다. 기시다 총리가 본격적으로 오염수 방류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시동을 걸었고, 바로 옆에 접해 있는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어떠한 굴곡도 없이 이를 용인하였다. ‘한국도 윤석열 정부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닐 만큼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오염수 방류에 어떠한 클레임도 제기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었다.

결국,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고, 일어나선 안 되는 사태였던 원전 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되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회복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해 두 손을 들고 반기는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외연 확장을 두려워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 회복은 중-러 관계를 견제할 수 있는 첫 단추와도 같은 과제였다. 이전까지 한미일과 북중러의 전략적 대립은 경제적 및 군사적 문제를 두고 실현될 수 없는 공식과 같았다. 이들 여섯 국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로 잰 듯 반듯하고 정확하게 자를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인 문제로 대립하는 부분이 많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냉전 시대만 하더라도 서로를 너무도 미워하는 앙숙과 같은 관계였다. 북한 역시, 언제든 본인들에게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있는 국가가 있다면 중러, 혹은 한미일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하곤 하였다.

 

그랬던 여섯 국가의 미묘한 관계는 틀어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반듯하고 정확하게 3:3의 구도처럼 갈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G2인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동맹 자원(혹은 전략적 파트너)을 구축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를 선택하였고,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택하였다. 이런 시점에서 절묘하게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일본과 산재해 있던 모든 문제를 눈감아주기 시작했고 (굴종적으로) 대일 관계를 회복시켜 나갔다.


이 두 국가의 관계 회복을 미국이 얼마나 반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존 F. 케네디 도서관 재단에서 올해 ‘케네디 특별 국제용기상’ 수상자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를 선정한 것이다. 수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함께 삼자 협력을 공고히 한 바 있다. 이 순간은 그간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가로막아온 민감한 역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정상이 용기 있게 노력해 왔기에 가능하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조국을 위해 보다 희망적인 미래를 선택한 것’


그렇다, 사실 제국주의 국가 중 하나였던 미국의 입장에선 현재의 대립 속에서 자신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주어야 하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일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이 석연치 않았다. 그런데 그 막힌 혈을 뚫어준 것은 심지어 일본도 아닌 과거의 피식민지배 국가인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었으니, 두 손을 들고 반길 수밖에 없으리라.


이 시점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두 지도자에게 상을 수여한 재단의 이름이다. ‘존 F. 케네디 도서관’. 미국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2년 10개월 간 짧은 대통령 임기 생활 동안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패권전략을 이어나가는데 그 기조를 공고히 했던 인물이다.


상의 이름이자, JFK가 즐겨 인용했던 ‘용기 있는 사람들 (Profiles in Courage)’은 어떤 뜻을 함유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받게 될 온갖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온갖 방해와 위험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사람’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를 국제사회와 외교관계에서의 전략적 의미로 재해석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외교를 대표하는 산증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부장관은 JFK의 외교 정책을 이렇게 정리했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널리 퍼진 미국의 상실감을 상쇄하고 미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변화와 지도력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 케네디 행정부가 대외정책의 초점을 주로 제3세계로 돌린 것은 1960년대 상황에서 그 지역의 민족해방운동과 탈식민주의가 미국의 세계 지배를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민족해방운동과 탈식민주의는 미국이 생각하는 패권전략과 결이 맞지 않은 기조였다. 소련을 견제하고, 민주주의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JFK 미국 정부는 군사 독재정권도 용인해 주었다.

  


“훌륭한 민주주의 체제, 군사독재의 지속, 아니면 사회주의의 체제다. 우리는 첫 번째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나 세 번째를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할 때까지 두 번째를 단념할 수 없다”


JFK의 이러한 정책적 기조는 당시의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박정희 정권 당시, 한국과 일본이 한일협정을 맺음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기여한 것도 역시 다름 아닌 JFK였다.



"케네디 정권은 한일 양국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상호 이익을 보여주고 청구권 관련 금액의 액수를 줄이는 데에도 깊이 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청구권 문제에 관한 김종필과 오히라의 일괄 합의가 이루어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일회담 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 : 케네디 정권기 청구권 교섭을 중심으로, <일본비평> 제10호, 2014.)

한일협정 반대 투쟁

탈식민주의와 민족주의를 억압하는 노선을 지향했던 인물이, 그래서 그 당시 냉전 시대의 승리를 위해 (반공주의를 위시한) 한국의 독재자, 박정희를 눈 감아주고,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체결하는데 일조했던 그 인물을 기리는 재단에서, 현재의 한일 두 지도자에게 ‘용기 있는 사람들’ 상을 수여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다.


미국이 패권전략을 위해 ‘침묵과 묵인’을 하는 것은 JFK 대통령에게 한정되는 것도 아니고, 한 두 해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어떠한 조건도 없이 돈독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의 이익이 아닌 미국과 일본의 이익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경계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 상을 받은 두 지도자에게 ‘자국민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이익과 관계 개선만 치중하는 사람’이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곱씹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글을 갈무리해본다.          

다음에 이 글을 이어서 포스팅을 하게 될 때는 현재 아프리카 내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던 군사 쿠데타 사건들과 60~70년대 미국의 지원을 업고 자행되었던 남미의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을 이어서 적어보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 인권과 안보라는 각각의 단어들이 단순히 흑과 백의 논리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의 패권전략과 연계하여 적어보고 싶다.





  


ㅣ 인용한 기사들 ㅣ  

이윤정, “기시다는 미국의 강아지” 후쿠시마 원전피해 소송 단장, 일 정부 독재 행보 비판. 경향신문, 23. 08. 24.     

이제훈, 노골화하는 ‘미국 우선주의’… 동맹 아닌 한-미 협력은 불가능한가. 한겨레, 23. 07. 03.     

정욱식, 될랑말랑 ‘한미일 vs 북중러’, 왜 허상이었나. 프레시안, 23. 08. 08.     

박용하, 대일 정책 논란 속에... 윤 대통령, 기시다 총리와 ‘케네디 용기상’, 경향신문 23. 09. 20.     

김종성, 하필 케네디재단 상을 받는 윤 대통령... 축하할 수 없는 이유. 오마이뉴스, 23. 09. 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