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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말 Feb 12. 2022

[끝낼 수 없는] ‘끝까지 전력투구’ 왕첸밍

그리고, 끝내 반성하지 않았던 박석민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꼭 추천해주고픈 넷플릭스 다큐가 있다. 대만출신 전 메이저리거 왕첸밍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끝까지 전력투구 : 왕첸밍이야기'다

끝까지 전력투구 : 왕첸밍(2018)


왕첸밍(王建民)은 ‘대만의 박찬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뛰어난 야구선수였다. 2005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2006 시즌과 2007 시즌에는 뉴욕 양키스에서 2년 연속으로 19승을 기록하며 에이스로 우뚝 서게 된다. 2년 간의 기간 동안 그는 38승 13패 평균자책점 3.66.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과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되는 상인 사이영상 2위, 그리고 아시아 투수 최초로 다승 타이틀을 획득한다. 그야말로 대만의 국민영웅이었다.


그 이후 2008년부터 은퇴하게 된 2016년까지 총 6시즌 동안 22승 23패 5.71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게 된다. 노모 히데오와 박찬호를 뛰어넘는 최고의 아시아 투수가 될 것이란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2009년부터 급격히 무너지게 되는데 바로 2008 시즌에 당했던 부상 때문이었다. 부상을 당한 그날도 그는 승리투수 요건을 채운 채 호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타자 타석에서 출루에 성공한 그는 추가 안타가 나오자 홈으로 쇄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심한 발 부상을 당하게 된다. 혼자 스스로 일어서기조차 버거운 심각한 부상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채 절뚝거리며 벤치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2008년 시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경기 후 받은 진단에서 발바닥 근육 파열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왕첸밍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 사람들은 믿었다. 뉴욕 양키스 최고의 에이스이자 대만의 국민 투수였으니까. 하지만 2009 시즌 그가 기록한 성적은 1승 6패, 평균자책점 9.64였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팀에서 방출당한다. 뉴욕 양키스를 떠난 그는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하다 대만 야구 국가대표로 나서기도 하고, 마이너리거에서 오랜 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는 그때 그 모습

그러나, 2006~2007 시즌에 보여주었던 에이스 같은 모습으론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왕첸밍을 여전히 기억한다. 단순히 실력이 뛰어난 19승 투수라거나, 아시아나 대만의 ‘최고’ 투수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력투구했던 선수로 말이다.


넷플릭스 다큐 <끝까지 전력투구 : 왕첸밍 이야기>는 부상의 늪에서 허덕이던 그가 여러 마이너 팀을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재활훈련에 매진하고 마침내 2016 시즌(그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시즌이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합류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때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부와 명성을 모두 가졌던 선수가 삼류 투수로 전락하게 되면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결국 모든 것을 놔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왕첸밍은 이야기한다.


“당연히 포기하고 싶지 않았죠. 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요. 마운드 위에 다시 서고 싶었죠” 


누구는 왕첸밍에게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메이저리그는 돈을 많이 주니까. 선수로 오랫동안 뛰면 연금도 줄텐데. 그저 돈을 받기 위해서 뛰는 것이 아니냐고.

이미 그는 메이저리그 경력 10년 차다. 적은 금액이지만 연금을 받을 수 있었고, 대만에서 생활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머나먼 대만 땅에 있고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전 매년 이사했어요. 어느 시점이 되니 제가 어디에 사는지 모르게 됐죠. 어땠냐 하면 잠에서 깨어나면 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요”

가끔은 유니폼이 아닌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더 익숙하기도 하다

그의 어깨에 난 흉터는 ‘영광의 상처’ 같은 단어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짜 아픔이었을 것이다. 수 차례의 수술과 지루하게 반복되는 재활훈련, 그리고 나오지 않는 구속과 팀 방출. 이런 과정들을 무수히 겪게 되면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그는 아픔을 무릅쓰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전력투구하였고 마지막 시즌, 6승 무패 평균자책점 4.22를 기록하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마지막으로, 왕첸밍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끝내고 싶었던 이 글을 한 선수만을 더 언급하고 끝내보려 한다. 야구를 대하는 선수들의 태도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거기엔 야구를 정말 잘하고 싶다는 순수한 신념과 의지를 가진 선수부터 야구라는 스포츠를 ‘직업’과 ‘돈’으로만 접근하는 선수도 있다.


지난해, 7월 한국 프로야구에선 ‘야구팬’으로서 차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사건이 있었다. 프로선수 4명이 방역수칙을 위반하면서 술자리를 가졌고 당국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검찰로 송치되는 사건이었다. 그 중심에는 박석민, 이명기, 권희동, 박민우가 있었다. 이들은 KBO 72경기 출장정지와 일부 벌금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그나마 이명기, 권희동, 박민우는 올해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서 모두 연봉을 삭감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고참이자 술자리를 주도했던 박석민은 달랐다. 그는 다른 선수와는 다르게 자유계약 선수(FA)를 통해 계약을 했고, 계약기간 동안은 연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단 ‘1원’도 삭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코로나 방역수칙을 어기고, 구단과 팬에게 상처를 안겼을 뿐만 아니라 야구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16억을 받을 예정이다.


‘야구로 속죄하겠다’라는 말은 옛말이다. 야구는 그들이 돈을 받고 하는 직업이다. 적정한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돈을 받으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죄를 덮겠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하지만, 많은 야구인들이 자신의 죄를 회피하려고 이런 말을 남발한다. 박석민도 마찬가지다.(심지어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언론을 통해서든 개인적으로든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았다. 사회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할 그가 선택한 행동은 '침묵'과 '억울함 호소'였다.)


박석민에게 은퇴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계약은 이루어졌고, 결국 그가 연봉을 받는 것은 정당한 권리다. 도의적 책임은 있을지언정 법적인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에게 연봉을 받지 말라거나 은퇴를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를 고운 눈으론 바라볼 수 없을 거 같다. 박석민도 자기 나름의 끝낼 수 없는 이유야 있겠지만 이를 듣고 납득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박석민은 왜 끝낼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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