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22살의 꿈 많고 당찼던 나는 홀연히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브리즈번으로 떠났다. 처음으로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혼자 비행기를 타고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브리즈번 공항에 내리는 순간 왠지 모를 해방감과 함께 맑고 청량한 공기는 나를 기분 좋게 해 주었다. 돈은 없었지만 꿈은 컸고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던 당차고도 용감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20년 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시 찾은 브리즈번은 22살에 찾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메인 거리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헝그리 잭 햄버거 가게, 주말이면 친구들과 수영하고 바비큐도 해 먹었던 사우스뱅크, 그리고 내가 공부했던 학교.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흰머리를 더 이상 새치라고 말할 수 없는, 불혹의 내 모습. 내 꿈은 고이 접어둔 채 내 아이들의 미래에 온갖 열과 성을 다하는 다둥맘이 된 내 모습이다.
첫째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열심히 육아와 일을 병행하던 때 이대로 안주하면 안 되겠다 생각하며 야간 MBA를 다녔다. 다시 대학생이 된 듯한 설레고도 짜릿한 기분에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러던 중 둘째를 임신하며 휴학했고 뒤이어 셋째까지 낳으며 결국 졸업하지 못한 채 마무리를 지었다.
졸업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으나 아이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는 내게 늘 탐구의 대상이었고 그 안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았고 그게 나의 행복이었다.
여전히 그것이 행복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세 아이의 “엄마”가 아닌 22살의 “나”를 다시 마주하게 되니 마치 잃어버렸던 어린 자식을 찾은 것 마냥 맺혀있던 무언가가 내 안에서 터져 나왔다.
그렇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은 배가 고프다며 재촉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미 저 멀리 보이는 놀이터를 향해 뛰어간다. 역시나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는 그들이다.
나에게도 꿈과 패기로 똘똘 뭉쳐 세상이 만만했던 22살이 있었음을.
배꼽을 내놓고 거리를 활보해도 부끄럽지 않았던 22살이 있었음을.
매일 더 나은 “나”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던 22살이 있었음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나의 20대가 다시 내 안에서 똑똑 노크한다.
“다시 꿈을 꿔봐. 아이들 꿈 말고 너의 꿈.”
브리즈번은 그렇게 다시 나에게 작은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리움의 발자국을 찾아 떠났던 여행에서 새로운 도약의 발걸음을 선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