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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숭맹숭한 파스타 Aug 25. 2021

편지

 표현에 늘 서툴렀던 나에게 있어서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돈을 쓴다는 것은 굉장한 애정표현이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개개인의 시간과 돈만큼 가치 있는 재화는 없으니 사실상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소비는 그 자체로 굉장한 헌신을 뜻한다 믿었다... 이런 구구절절한 변명은 다 집어치우고 더 솔직해지자면, 말과 행동으로 보이는 애정표현에 인색한 성격 탓에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시간과 돈을 써서 표현하는 방법밖에는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그간 타인에게서 받아왔던 사랑 표현 중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탓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너에게 쓰는 시간과 돈을 줄인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큰 결단이었다. 앞 뒤 안 따지고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사다 줘야지, 내 스케줄을 조금만 변경해서 널 볼 수 있는 시간을 늘려야지’ 같은 생각들을 의도적으로 거두어 낸다는 것은 실로 고통스럽고, 하면 할수록 의미를 찾기 힘든 행위였다. 그럼에도 이 매정하고 괴로운 선택을 한 이유는 널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나의 존재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주장도 강하고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확실히 표현하는 나만의 화법을 네 앞에서는 단 한순간도 내보일 수 없었다. 이것은 분명히 너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다. 넌 나에게 주장을 꺾고 자기 의견을 들어달라고 부탁한 적도, 무리해서라도 자신을 위해 헌신해달라는 부탁도 결코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전히 나의 의지였고, 그 의지가 오로지 나에게서 기인한 것들이라는 사실이 날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점점 작아지던 나는 어느 순간 네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는 바보 천치가 되어 있었고, 그런 나를 발견하면서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비굴하게도 ‘이런 날 그 아이가 좋아해 줄 리 없어.’ 같은 멍청한 생각이었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 비로소 경고음이 울리기 마련이다. 나는 지난 수개월 간 그 경고음을 무시하고 널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 자신이 훼손되어가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억울했다. 어리석게도 이번엔 이 경고음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어릴 때의 성숙하지 못했던 기억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보다는 분명히 성장했고 이제 나는 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꿈을 가졌었다. 이 꿈이 헛되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결과적으로 반쯤은 성공했으니 아주 터무니없는 꿈도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너는 뭘까, 늘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얼마 전에 비로소 찾았다. 너는 나에게 일탈이자 탈출구였고 그와 동시에 안식처였다. 삶의 안식처가 일상 밖에 머물러 있으면 위험하다. 안식처 또한 나의 일상 안에 존재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래야만 너를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널 끊임없이 내 일상으로 데려오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네가 내 일상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 왔다. 하지만 일탈의 장소에서 만난 너를 일상으로 데려오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도 너는 계속 내 일상 밖의 테두리를 겉돌 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한 때는 너도 날 사랑한다고 믿었었다. 나에게 호의적이었던 그 말투, 행동, 눈빛 모든 것들이 내가 그렇게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건 정말 너의 잘못이 맞다고 믿고 싶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나는 스스로에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네가 나에게 특히 더 살가웠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려 부단히 애썼다. 그래서 네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다정하게 굴면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 질투 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증명하지 못했다는 실망, 내가 아닌 타인에게도 별 의미 없단 듯 다정하게 구는 너에 대한 배신감, 너에 대한 믿음의 붕괴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의 끝엔 좌절만이 남았다. 그러면서 너에 대한 기대를 낮추게 되고 종래에는 ‘네가 날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어’의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나의 호의가 상대에게 당연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 스스로도 늘 잊지 않고 타인의 호의에 감사하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의 본질이란 것이 이토록 속물적인가 싶을 정도로 자주 망각해버리곤 한다. 익숙해지는 것이 이토록 잔인할 줄 몰랐다 아니,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 미련한 짓을 그만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 이르니 직관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나의 호의가 익숙해진 것일까?’ 생색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것 또한 일종의 경고음 같은 것이었다. 실은 이 질문은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다. 바꿔 질문하면 ‘그 아이에게 헌신하는 나 자신이 익숙해진 걸까?’와 같은 질문이 된다. 결국 야금야금 깎이는 나를 스스로 자각하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하려는 순간, 그간 외면해왔던 원초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내재된 욕망이 있다. 아무래도 내 욕망은 사랑하는 이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 또한 나의 욕망이니 이 것을 사랑하는 이를 위한 것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헌신하고자 하는 의지는 결국 나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에게 내 것을 주면 줄수록 고통스러워졌다. 욕망에 충실했음에 대한 대가였다.


 나는 너를 사랑할수록 맞지 않는 신발에 발을 구겨 넣고 있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나를 많이 아끼시는 교수님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예뻐 보일 이 시기에도 너는 그 아이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먼저 했잖아. 그 아이가 너에게 최선이 아닐 수 있어.’ 그렇다. 나는 처음부터 네가 나에게 맞는 신이 아닌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너의 모든 것이 좋았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그럼에도 내가 그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너의 단정함이 좋았고, 너의 엉뚱함이 좋았고, 너의 웃음이 좋았다. 날 보던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그 눈이 좋았고 너의 차분함이 좋았다. 무채색 옷을 즐겨 입으면서 액세서리는 꼭 화려한 것을 고르는 네가 좋았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네가 귀여웠고 가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심드렁한 네 말투도 좋았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우유부단함도 너라면 괜찮았다. 널 사랑하는 나는 이렇게 싫어하던 것도 좋아진 반면에 너는 그렇지 않았다. 날 사랑하지 않으니 네가 싫어하던 것을 가진 나까지 좋아할 수 없었고 그것이 끝에는 화근이 되었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이 좋았지만 너는 그렇지 않았으니 내가 가진 것들 중 네가 싫어하는 것을 지워야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네가 싫어하는 것들을 가진 나 또한 나라는 것을. 나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 나를 얼마나 크게 훼손시키는 행위인 줄도 모르고 나는 자꾸만 나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넌 왜 이것밖에 안돼?’ 라며 비난하기 바빴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번에는 다른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내 의지는 나를 벼랑 끝에서 구해주었다. 경고음을 마주한 그동안의 나는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도망치듯 놓아버렸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너를 내 일상으로 끌어오는 것이 힘들다면 너를 내 일탈의 가장 가까운 곳에 둘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이제는 널 사랑하는 내가 아닌 널 아끼는 친구로서 서보기로 결심했다. 널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당장의 첫 단계는 널 마주하지 않는 것이었다. 지난 몇 달간 거의 매일 보던 너를 근 한 달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꽤나 씁쓸하고 괴로웠다. 어딜 가도 너와 관련된 단어들이 나돌았고 그 단어들을 너와 관련지어 생각하지 않기란 실로 고문이었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질 때면 나는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고 감히 네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간신히 너와의 기억을 매달아 놓으면 너는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그 기억들을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바닥에 있어서 너무 어지러운 그 예쁜 기억들을 단정히 묶어놓으면 너는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단 듯 매듭을 풀고 흐트러뜨려 놓았다. 지금 이 창과 방패의 싸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단시간 안에 끝날 싸움이 아니란 것은 알겠다. 내가 애써 정리해놓은 실타래를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 풀어헤쳐 놓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지금과 같이 통탄하며 다시 정리해보려고 애쓸 것이다. 너는 내 최대 복병이었지만 동시에 구원자였다. 그러니 너를 사랑하는 나를 후회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너를 떠올릴 때 전보다 조금은 편해지고 싶다. 앞으로의 너는 나에게 있어 복병도, 구원자도 아닌 그저 내 삶에 녹아든 20대 어느 날의 기억이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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