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고래 May 14. 2020

특수교육이 변화시킨 나의 가치관

 특수교육과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은 왜 특수교육과를 선택했는지 꼭 물어본다. 그런 질문을 들으면 나는 괜히 부끄럽다. 사람들은 내가 투철한 봉사정신과 희생정신 때문에 선택했을 것이라는 대답을 은근히 기대하고 물어보는 것 같은데, 사실 나의 동기는 그들이 기대한 대답과는 멀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선택했다고 답하는 게 요즘 세상에 그렇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건만 막상 입을 떼기는 참 어렵다. 그건 아마 내가 교사보다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고, 내가 가르쳐야 할 학생들은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은연중에 특수교육과 학생으로서 갖는 특별한 무게감과 사명감은 나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정립해 나가는데 꽤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앞으로 내가 가져야 할 책임감, 그리고 장애인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게 되었다.



 특수교육과 학생으로서 내가 새롭게 갖게 된 책임감은 사람들(특히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는 학생들)이 장애인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지식을 고쳐줄 수 있고, 장애인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서도 제대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나는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이들이 차별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지식에서 비롯된 편견과 오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장애학생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만큼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부족도 중요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장애인을 무조건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은 불쌍하게 여겨져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든지 나의 친구, 동료로서 만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일하고, 도우며 살아갈 사람들이지 무조건 도움만 받는 사람들은 아니다. 이러한 생각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끄럽지만 특수교육과에 입학해서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이런 사고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특수교육과에 들어와서 우리 사회가 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깊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사회가 소수자들을 포용한다는 것은, 그 사회는 각자가 지닌 개성과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사람들이 존중하고, 협력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가 진보하기 때문에 소수자들을 사회에서 분리하기보다는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공존의 의미가 강조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소수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돕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능력일지라도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만큼 능력을 발휘해서 사회에 기여하도록 권장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교육과에 들어와서 장애학생들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자립과 사회기여도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특수교육과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고, 특수교육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때로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나 또한 예상치 못한 특수교육과의 만남이 나를 다양한 방면에서 심층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성장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앞으로 나를 더 성장시킬지 기대된다. (2017.09 ?)



지금 이 글을 다시 읽어도 나의 생각은 그 때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이 때가 좀 더 진지하고, 목적이 뚜렷해보이고, 진로에 대한 내적동기도 더 있었던 것 같아서 살짝 반성하게 되었다..ㅎㅎ

그리고 네 번째 문단의 내용, 그러니까 사회적 소수자와 공존하고 그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에 관해서 추가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학교에서 UD(Universal Design)의 개념을 배우고 생각하게 된 것인데, 먼저 UD는 쉽게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고안된 디자인' 이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세면대(키가 작거나 큰 사람,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 휠체어에서 주로 생활하는 장애인 등 다양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자신에게 최적화 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그란 문고리가 아닌 스틱(?) 모양의 문고리(동그란 문고리로는 사람이 손으로 문고리를 움켜쥐고 돌려야 문이 열리기 때문에 손으로 조작하는 활동이 어려울 수 있는 어린이나 지체장애인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스틱 모양의 문고리라면 어느 신체부위로든 문고리를 아래로 누르는 힘만 가하면 쉽게 열리기 때문에 UD의 예가 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UD의 구체적인 예시일 수 있겠다. 여기서 확장시켜 생각해보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곧 나에게도 돌아오는 배려임을 알 수 있다. 손 조작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스틱형 문고리로 바꾸면 조작이 어려운 사람 뿐만 아니라 무거운 짐을 들고 문을 열어야 하는 우리에게도 문을 열기가 더 편리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생활에서 불편함을 가장 많이 겪는 사람들까지 고려하여 UD의 형태로 디자인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이득을 얻었듯이, 사회가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를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그 노력의 수혜자가 됨으로써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