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산유국이 된다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나라
최근 포항 영일만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뉴스로 갑론을박이 치열한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리도 이제 부유한 중동 국가들처럼 '산유국'의 반열에 올라서서 먹고살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희망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저도 우리가 '산유국'이 되어서 국가 경제 수준이 한층 더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설령 우리가 산유국이 되더라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나우루(Nauru)'라는 나라에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나우루'라는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 또한 피지 살이를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었으니까요.
나우루는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정말 작은 섬나라입니다. UN 정회원 국가 중 가장 인구가 적은 나라(약 1만 명)이며, 면적은 두 번째로 작은 나라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구글 맵에서는 아주 크게 확대해야 보일 정도이죠. 나라 전체를 한 바퀴 도는데 차량으로 30분이면 충분합니다.
나우루는 이렇듯 정말 작은 나라이지만, 한 때 국제사회에서 그 존재감을 뽐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요.
무슨 소리인지 하시겠지만, 1980~90년대까지 나우루의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이 버블경제로 흥청망청(?) 쓸 때 1인당 국민소득이 약 1만 달러였는데, 당시 나우루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달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했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태평양 한복판, 적도 근처에 고립되어 있는 작은 섬나라가 이렇게 부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인광석(Phosphate)'라는 자원 덕분이었습니다. 나우루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앨버트로스를 비롯한 각종 바닷새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고, 그들의 배설물이 섬에 오랜 기간 쌓인 결과 나우루는 풍부한 영양분을 갖춘 일종의 천연비료가 가득한 섬이 되었습니다.
이 인광석(인산염)의 가치를 알기 전의 나우루 사람들은 다른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섬을 처음 발견한 유럽 사람들은 나우루의 모든 환경이 사람이 살기에 쾌적하다고 생각해 섬 이름을 '기쁘다'라는 의미를 지닌 'Pleasant Island'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유럽인들이 섬을 왕래하기 시작하고, 이들이 가져온 무기와 술로 인해 섬은 점점 부족 간의 갈등과 전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던 중, 1899년 영국의 한 회사가 나우루에서 인광석을 발견하며 섬은 큰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식민지배 아래 있었던 나우루는, 독일의 패전과 함께 나우루의 인광석을 노린 호주의 위임통치를 받게 됩니다. 영연방의 일원이었던 호주는 영국, 뉴질랜드와 함께 영국 인광석 위원회(British Phosphate Commission)의 깃발 아래 나우루에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인광석을 대대적으로 채취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호주의 대규모 농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되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군이 나우루를 점령하게 되면서 호주의 인산염 채취가 중단되었지만, 일본이 항복선언을 하자마자 인산염을 노린 호주는 즉시 군을 투입하여 나우루를 신탁통치하게 됩니다. 호주의 인산염 채취는 1968년 나우루가 독립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나우루는 독립으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인산염 채취와 수출로 나우루는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기 시작합니다. 앞서 밝혔듯이 1980년대 나우루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우루의 인구는 8 천명이 채 되지 않았고, 나우루는 막대한 부를 모두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배분하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언뜻 보면 매우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결정으로 보입니다.
나우루 국민들의 부유한 삶은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모든 가정에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하였고, 원할 경우 호주, 영국, 피지 등 유학과 해외여행을 무료로 제공하였습니다. 한 가정에는 1년 내내 일하지 않아도 풍족하게 먹고살 만한 생활비를 제공하였습니다. 도로가 부실한 나라였고, 달릴 곳도 없었지만 국민들은 너도나도 최고급 승용차를 사고, 해외여행을 즐기는 생활을 누렸습니다. 당연히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우루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되었습니다. 나우루 국민들은 유명한 CF 로고처럼 그저 '인생을 즐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나우루의 영광은 2000년대 들어 급속히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인광석이 고갈되면서 나우루 정부의 수입은 급감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원경제에 거의 100%를 의존하다 보니 농업이나 어업 같은 1차 산업은 소멸되어 있었고, 그동안 모든 식료품과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물가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노동하는 법을 잊어버린 나우루 국민들은 수입된 콜라, 초콜릿, 가공식품에 찌들어갔고, 세계 1등 수준의 비만율을 기록하게 됩니다. 국민 대부분이 당뇨나 고혈압 같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휠체어나 목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인광석으로 이루어졌던지라 나라 전체가 파헤쳐지고 영광의 시대에 해안도로를 누볐을 차들이 버려진 채 녹슬어가는 을씨년스러운 풍경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다급해진 나우루에게 호주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은 호주로 입국하려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을 나우루에 수용하고, 그 대가를 나우루에 지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광석이 사라진 나우루 섬 내륙 지역에는 호주 정부가 세운 난민캠프들이 들어섭니다. 그러나 난민들은 나우루의 가혹한 환경에 크게 저항하였으며, 호주 정부도 난민들을 사실상 나우루에 '구금'시켰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결국 이 난민캠프도 지난해 모두 철수하여 폐허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나우루에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나우루정부는 또 다른 자원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바로 '심해저 광물자원'입니다. 태평양에는 2차 전지나 반도체 등의 생산에 활용될 수 있는 '망간단괴' 등의 심해저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와 나우루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심해저광물자원의 종류와 매장량을 알아볼 수 있는 '탐사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이를 직접 '채굴'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심해저 광물 자원 채취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양오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때문입니다. 다시 자원을 통해 경제를 일으키고 싶은 나우루는 유엔 산하 국제해저기구(ISA)에 심해저광물자원 채취를 시작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세계 최초로 제기하였습니다. 작은 나라 나우루의 요청으로 심해저광물자원 채취를 둘러싸고 국제사회는 격렬한 토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출장에서 만난 나우루 관계자는 심해저광물자원 채취는 땅을 파는 방식이 아닌, 해저에 널려 있는 광물들을 흡입(vacuum)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환경에 큰 영향이 없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였습니다.
나우루의 또 다른 희망 중 하나는 국제사회의 원조입니다. 최근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을 대상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중국으로부터의 원조를 위해 나우루 정부는 최근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를 맺으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우루 인구가 워낙 적고(약 1만 명), 여전히 조금씩 인광석을 수출하고 있는 탓에 1인당 국민소득이 경제협력기구(OECD)의 기준을 넘어 국제사회의 공식적인 원조를 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번 출장에서 만난 나우루 관계자는 이는 나우루의 현실 상황을 비추어 볼 때 불합리한 처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우루의 역사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유럽, 그리고 호주에 의해 인광석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나우루의 국민들은 여전히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나우루가 80년대 벌어들인 돈으로 유망한 투자처에 투자를 해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국가 정책에서도, 우리 삶에서도 현재에 충실하는 만큼 미래를 위한 대비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정말 산유국이 된다 할지라도, 이를 무작정 즐기기보다는 미래 세대를 위해 다각도로 성장 동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에는 나우루에 있었던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다뤄볼 계획입니다. 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나라에 수백 명의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 대한 기록을 이번 출장을 통해 얻었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