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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 혹은 악마의 사자

2025년 을사년 뱀띠 해

by goeunpa

'뱀'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징그럽다? 유혹? 간사함? 혹은 공포의 대상일 수도 있겠네요.

민담에는 뱀이 사람을 해하거나, 뱀을 잘못 죽였다가 보복을 당하는 이야기들이 다수 전합니다. 뱀만큼 배척받으면서도 인간의 역사와 밀접한 동물도 없을 거예요. 이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동물이라면 인간의 이야기 안에서 외면받았을 법한데, 오히려 정말 많은 이야기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동물이 뱀입니다.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 뱀띠 해입니다.


서양에서 뱀은 대표적인 '악의 상징'입니다. 태초의 인간을 낙원에서 쫓겨나게 한 주체가 뱀이니, 이건 뭐 더 말할 것도 없죠. 그 뒤 뱀은 사탄의 상징으로 다뤄졌습니다(말 그대로 '상징'인 것이지, 뱀이라는 동물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경멸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사이비겠죠).

그러나 일각에선 인간이 낙원에서 쫓겨난 뒤 지혜를 얻은 것으로 보고, 뱀을 지혜의 상징으로 보는 분석도 존재하긴 합니다. 악마와 지혜? 어우러지기 쉽지 않은 키워드들이네요.


동양에선 어떨까요?

십이지신十二支神이라고 아실 겁니다. 12개의 방위에 따라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 각기 다른 열두 동물의 얼굴에 사람 몸을 하고 있는 신들이죠.

십이지는 사실 한국과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더 멀리는 인도, 이집트, 멕시코 등에도 존재합니다. 문화권에 따라 조금씩 동물이 바뀌기도 해요. 베트남에서는 토끼 대신 고양이, 인도에서는 호랑이·닭 대신 사자와 공작새가 등장하는 식이죠.

이 십이지신 안에 꼭 포함되는 동물 중 하나가 바로 뱀입니다.

십이지신도_조선 시대 제작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뱀은 역사서 속에서도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신라 시조 박혁거세(신라 제1대 왕, 재위 기원전 57~기원후 4년)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갔다. 7일 뒤 유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고 왕후도 역시 죽었다고 한다. 국인들이 합장을 하려고 하니 큰 뱀이(大蛇)이 나와 쫓아내며 못하게 하여, 5체五體를 5릉五陵*1에 각각 장사 지내고 역시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담엄사曇嚴寺 북쪽의 능이 바로 이것이다. 태자 남해南解가 왕위를 이었다.*2

경주 오릉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마치 신령스러운 동물이 무지한 백성의 행동을 저지시키는 모습처럼 보이지 않나요? 그 동물이 '큰 뱀'이라는 것 역시 일반적으로 보이지는 않지요.

이것 외에도 『삼국유사』에는 통일 신라 경문왕景文王(신라 제48대 왕, 재위 861~875)과 뱀의 범상치 않은 관계도 전하고 있습니다.


왕의 침전에는 매일 저녁 많은 뱀들이 모여들었다. 궁인宮人들이 놀라고 두려워 쫓아내려 하니,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만약 뱀이 없으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다. 쫓아내지 말라."라고 하였다. 늘 잘 때에는 혀를 내밀어 온 가슴에 펴고 있었다.*3

경주 구정동 방형분. 경문왕릉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고분입니다.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곳에 나올 법한 기이한 광경이죠?

경문왕은 국학國學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4 근시직 등용과 황룡사 구층 목탑 개조 등의 토목공사를 통해 왕권 강화를 꾀하려 노력한 왕이었지만 치세 기간은 그다지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전염병·홍수, 지진 등의 천재지변이 연이어 발생했고, 진골 귀족들의 반란도 계속되었죠. 이러한 당시 모습을 토대로 경문왕의 '뱀'을 근위 세력을 묘사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요.

석제 십이지신상 중 뱀_통일신라 시대 제작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올해 을사년은 푸른 뱀띠 해라고 합니다. 푸른 뱀은 신중한 성격에 지혜와 통찰력이 뛰어나고, 높은 적응력과 창의적 사고를 가졌다고 해요. 나라의 혼란이 점입가경인 지금, 푸른 뱀의 지혜가 발휘되었으면 합니다.

혼란한 시국이 하루빨리 정리되기를 바라봅니다. 위치에 걸맞은 태도와 처신이 그렇게나 어려운 걸까요.




*1) '경주 오릉'은 현재 경주시 탑동에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의 다섯 유체를 나누어 장사 지내고 오릉이라 했다고 전합니다만, 『삼국사기』에서는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 등 5명의 무덤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2) 『三國遺事』 卷1, 紀異1, 新羅 始祖 赫居世王.

*3) 『三國遺事』 卷2, 紀異2, 四十八 景文大王.

*4) '국학'은 신라의 교육 기관으로 31대 신문왕神文王 2년(682) 때 설치했습니다. 최고 교육 기관으로 기능하였으나 그 위상은 신라 하대로 갈수록 점점 약화되었고, 신라 말기에는 당나라 유학 출신 지식층들이 국학 출신을 완전히 압도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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