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떡국 속에 담긴 '떡' 이야기

한국인의 소울푸드 떡볶이의 원조 브랜드

by VIta kim

모두 설날 연휴 때 '떡국'드시고 오셨나요? 우리는 새해나 설날에 떡국을 먹어야지만 ‘한 살을 더 먹었다’라고 말하는 풍습이 있는데요. 설날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명절인 추석에는 가족들과 다 같이 송편을 빚어서 먹었습니다. 이처럼 명절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떡'은 현대시대에 와서 온 국민이 사랑하는 소울푸드 ‘떡볶이’의 원재료가 되었는데요. 오늘은 우리의 소울푸드 '떡볶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KakaoTalk_20241109_073958451_01.jpg
화면 캡처 2024-12-08 091100.png

떡볶이의 역사는 200년이 넘었지만, 지금의 떡볶이와는 다르다고?

조선시대 ‘떡볶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기록은 1800년경 편찬된 조리서 ‘시의전서’에 최초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시의전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떡볶이는 흰떡과 쇠고기, 간장, 표고버섯, 전복 등으로 만다는 궁중 음식 중 하나라고 설명이 되어있는데요. 지금과 다르게 ‘고추장’을 사용한 양념이 아닌 일종의 ‘찜 요리’로 분류하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발달된 고급 궁중 음식 중 하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고추장이 없었던 건 아닐까?

당시 고추장이 없었기 때문에, 간장으로 양념된 떡볶이가 만들어지지 않았냐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1766년대 편한 된 ‘증보산림경제’에는 ‘만 초장’이라는 이름의 최초의 고추장 기록이 등장한 걸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미 ‘고추장’을 실제 음식에 사용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지금 즐겨 먹는 떡볶이와는 같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화면 캡처 2024-12-08 091100.png

최초의 고추장 떡볶이 창시자 : 마복림 떡볶이

고추장 떡볶이의 첫 등장은 1953년 신당동에 위치한 마복림 떡볶이가게에서 최초로 등장했습니다. 최초의 떡볶이 기록 등장 후 약 150년 만에 일어난 일인데요. 당시 신당동은 6.25 한국 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몰려든 동네 중 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미군 물품 보따리 장사를 하던 마복림 떡볶이의 창립자 마복림 할머니는 어느 날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중국 음식점에 방문해 실수로 개업식 떡을 짜장면 그릇에 떨어트리게 되었고 우연히 맛을 보게 되었는데요. 그 뒤로 마복림 할머니는 고추장과 밀가루 떡을 버무려 신당동 노점에서 처음으로 고추장 떡볶이를 팔게 되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원조 고추장 떡볶이의 탄생입니다.

KakaoTalk_20241109_073958451_06.jpg

마복림 떡볶이 주변으로 형성된 떡볶이 가게들 : 고추장 떡볶이 시장 확장

마복림 떡볶이를 시작으로 고추장 떡볶이 맛에 반한 사람들은 주변 입소문을 타면서 신당동에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브랜드 초기 성장 전략 중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브랜드 이름을 홍보하는 전략이 아닌, 자신이 최초로 진입한 카테고리를 홍보해 시장의 수요를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마복림 떡볶이는 '고추장 떡볶이’를 전파시키며 다른 떡볶이 가게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조성시켰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초석을 다지게 한 것이지요. 덕분에 마복림 떡볶이는 '고추장 떡볶이'라는 시장을 확대시키면서, '고추장 떡볶이'의 원조 자리를 그대로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KakaoTalk_20241103_173227485.jpg

문화가 돼버린 신당동 떡볶이 타운

신당동에 떡볶이 가게들이 줄비어 생기고, 떡볶이를 즐기기 위한 젊은 청춘 남녀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떡볶이 가게들은 각자 가게의 차별화를 위해 ‘DJ’를 고용하면서 일명 ‘청춘 남녀 거리의 메카’로 만들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떡볶이 타운이 조성되면서, 청년들의 미팅이나 만남의 장소가 되며 젊은이들의 거리로 재탄생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 뒤로도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지금까지 신당동의 문화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mosaRsOrJt.jpeg

72년 동안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마복림 떡볶이

마복림 떡볶이는 현재 아직까지도 신당동에서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953년에 개업해 올해까지 약 72년에 가까운 세월인데요. 마복림 떡볶이는 지금도 가보면, ‘역시 원조’라는 말과 함께 여전히 떡볶이를 즐기기 위해 긴 줄을 선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설립 50년 후 0.7%가 생존하고, 100년 후에는 0.03%만 살아남는다는 자료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요. 마복림 떡볶이는 7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국, 마복림 떡볶이만의 브랜딩

현재 마복림 떡볶이는 전국적으로 신당동에서만 원조 1곳, 막내아들네 2호점 등 단 3곳에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72년 동안 전국적인 확장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반 장사를 했던 마음가짐 그대로 유지한 채 지금까지 그 운영방침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냐면 마복림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5년 전에 처음으로 며느리 3명을 불러 유일하게 떡볶이 레시피를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동안 마복림 떡볶이의 레시피를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노력해 왔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죠. 그 덕분에 마복림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엔 '원조'의 이미지를 굳건하게 지켜올 수 있었고, 돌아가신 후에도 '원조'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고 지금까지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마치 코카콜라의 제조 비법을 전 세계 3명만 알고 있다는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나요?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불리는 떡볶이는 현재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어 많은 가게들이 생겨났습니다. 입맛이 현대화되면서 예전과 다르게 떡볶이의 맛의 기준이 달라지기도 했었을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복림 떡볶이를 찾는 고객들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마복림 떡볶이와 같이 성장해 왔던 이들은 이제 맛을 뛰어넘어 함께했던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싶어 방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시절 그 맛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마복림 떡볶이의 맛을 말이에요. 이게 바로 원조가 지녀야 할 브랜드의 자산 가치이지 않을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 <하얼빈>을 꼭 봐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