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디디아 Sep 17. 2020

어느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 사별 8년 차 엄마의 이야기


저는 30살에 사별하였습니다. 당시 딸은 4살이었고, 아들은 백일이 되지 않았죠. 벌써 딸은 12살이 되었고, 아들은 9살이 되었네요. 어제 둘째가 갑자기 “엄마, 나도 아빠가 있으면 좋겠어. 왜 나만 아빠가 없는 거야?” 하면서 울더라고요.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가끔 하긴 했지만, 어제처럼 울면서 이런 적은 없어서 사실 살짝 당황했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우리 아들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을까?”하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아빠가 없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놀린다네요. 현장을 직접 보지 않고 아이의 말만으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긴 어렵지만, 제 생각엔 ‘아빠, 엄마, 자녀’로 구성된 가족 형태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가 없는 가족을 낯설게 여겨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잠시 후 저는 아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말해서 당황하고 속상했겠구나. 그래서 너는 어떤 생각이 들었니?”

아들은 “걔네들이 대개 멍청하다고 생각했어. 바보 멍청이들이야! 근데 엄마, 그래도 속상해!”

이때 옆에서 동생의 말을 듣고 있던 누나가 한마디 하더군요.

“참나! 웃기는 애들이네. 엄마 아빠 다 있으면 뭐 하니? 인성이 그 모양인데! 친구를 놀리는 건 못난이들이야. 못난이랑은 놀지 마! 또 그러면 누나한테 말해. 누나가 가서 혼내줄게.”

12살 딸이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렸네요.  


남편이 갑자기 죽고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지만 한참 어린 두 아이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저는 아빠 없이 자라야 하는 두 아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엄마니까요.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아빠의 부재를 인정하고 아이들을 어떻게 당당하게 키울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자라길 바라는 게 모든 엄마의 마음이지만, 그럴 수는 없을 테니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삐뚤어진 시선에 대응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죽음과 사별에 대해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말해주고 질문에 대답해 줬어요.

   

“이 세상에 엄마나 아빠가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 곤충이나 꽃처럼 사람도 태어나면 언젠가 죽게 되는데, 너희 아빠는 조금 일찍 하늘나라로 가신 거야. 아빠는 너희를 처음 만났을 때 많이 기뻐했고, 정말 많이 사랑하셨단다. 지금 우리가 아빠와 같이 살 순 없어도 우리 마음속에 아빠는 항상 함께 계실 거야. 혹시 살다 보면 아빠가 없다고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놀리는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는데, 엄마는 그 아이들이 정말 어리석다고 생각해. 아빠가 없는 건 절대 놀림받을 일이 아니고 불쌍한 일도 아니야. 너희들은 세상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단다. 아빠도 너희를 정말 많이 사랑하셨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엄마가 너희들을 더 많이 사랑해 줄게.”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 그리워하거나 질문을 할 때도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고, 죽음이나 사별에 대한 동화책을 보여주면서도 자주 해주었어요. 아빠의 죽음에 대해 거짓 없이 사실대로 설명하고, 아빠가 없는 것이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어요. 그랬더니 몇 년 후 세상에서 제일 지혜롭고 든든한 딸과 누나가 생겼네요. ^^


어른이든 아이든 상처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 아이들은 언제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처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럴 때 아이에게 상처를 준 세상을 탓하기보다 아픈 말과 시선에도 깊이 상처 받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싶어요.  처음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시련만 가득한 세상이 암흑 같았는데 세월이 흘러 마음이 단단해지니 슬픈 이야기기도 이렇게 웃고 넘기는  날이 오네요.



⁋ 사별 6개월 차 엄마와 아들의 대화
  

아들 : 엄마, 요즘 아빠 생각이 많이 나.  잠이 안 올 때도 있고... 마음이 좀 그래.     

엄마:  그렇구나.  엄마도 그래.     

아들: 엄마! 내가 밉고 후회스러워. 아빠랑 나눈 카톡을 봤는데 그깟 전화 한 통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아빠한테 전화도 잘 안 했어. 억울하고 화도 나고... 슬프고... 마음이 복잡하고 감정이 엉망징찬이야.     

엄마: 네 맘 알아. 엄마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랬어. 우리 이제 동지가 됐네.     

아들: 엄마, 이런 마음이 얼마나 갈까?      

엄마: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잊히고 그러면서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우리가 아빠를 많이 그리워할 시간이니까. 우리가 좀 의리 있는 의리의리 한 패밀리잖아!     

아들: 아직 아빠한테 배울게 많은데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면 난 어떡하냐고? 억울해, 엄마!     

엄마: 아들아, 세상엔 좋은 어른들이 많단다. 네 주변의 좋은 어른들을 아버지 삼아서 네가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렴. 네가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넌 많은 아버지와 형들을 갖게 될 거야.      

아들: 엄마, 시간이 지나서 내가 아빠를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엄마: 엄마가 경험자로서 말해주는데 부모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더라. 나이가 들어 네가 아빠가 되고 아빠랑 비슷한 나이가 될수록 더 생각나고, 어릴 때는 이해가 안 되던 아빠 똥고집도 이해되고 그럴걸. 그리고 우린 같이 찍은 사진이 많잖아. 사진이 기억을 지켜 줄 거야.      

아들: 맞아. 아빠 가끔 똥고집 있었어! 아빠 없다고 이제 막 씹는구나, 엄마.

아빠 동영상을 많이 찍어둘걸 그랬어. 목소리도 기억할 수 있게. 아빠 목소리가 자꾸 희미해져.      

엄마: 아빠의 모습과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아빠가 ‘아들이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길 바라셨는지’ 그 마음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아들: 엄마, 아빠는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셨지?      

엄마: 아들아, 그건 네가 생각해봐야지. 네가 아빠랑 함께 보낸 시간과 대화를 떠올려 보면 거기 아빠 마음이 있을 거야. 아빠가 너한테 써주신 편지와 문자에도 있을 것이고.

엄마는 지금도 아빠가 뭐라고 말할지 빤히 알 것 같다. 너 내일 중요한 시험 있다며.ㅋㅎㅎ

아들: 근데 엄마,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 속에 아빠가 있어서.... 아빠가 없던 날을 살아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 마음이 아파!  엄마, 나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슬픔이 되어 버렸어.

 

- 아들은 말이 없고, 엄마는 울컥 목이 메어 온다-


엄마: 아들, 우니?  우리 아들 눈물 닦아 줄 맘씨 고운 여자 친구 하나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아들: 엄마 앞에서만 울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안 울어.

엄마, 나 가끔 우는 거야. 즐겁게 잘 지내는 날이 더 많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 응, 그럴 거라는 거 알아. 엄마도 너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잖아. 아들아, 엄마는 지금 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는 엄마에게 어떤 말도 해도 되고, 엄마 앞에서 울어도 돼.  알지?     

아들: 엄마, 사랑해. 무지 많이 사랑해.      

엄마 : 엄마도 우리 아들 엄청 사랑해.      


결국  엄마와 아들의 핸드폰은 눈물에 젖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약하고 아들은 엄마에게 약하다. 하지만 엄마와 아들은 서로를 사랑함으로 상실의 슬픔을 극복해 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자녀의 애도를 도와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