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별하였다’ 매거진은 두 명의 브런치 작가( 여디디아와 일라이어드)의 글로 구성되어 있지만, 3월 8일 종이 책으로 출간된 “나는 사별하였다”는 네 명의 저자와 18명의 인터뷰이, 두 명의 사별 자녀 그리고 1명의 일러스터레이터가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나이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며, 직업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나는 사별하였다”입니다.
이 책은 “언 손을 녹이는 것은 언 손이구나”라는 추천사로 시작됩니다.
“어쩌면 언 손을 녹여줄 수 있는 것은 그 손을 단번에 녹여주는 뜨거운 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차가움을 단번에 녹여주는 뜨거운 손은 분명 고맙겠지만, 까닭 모를 아픔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언 손을 녹여줄 수 있는 손은, 그 손을 오래도록 잡아주는 언 손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책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사별자 25명의 마음을 잘 대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언 손의 시림과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언 손인 것처럼, 사별의 슬픔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이도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별자일 것입니다. 사별 후 120여 일이 지날 무렵 저는 우연히 알게 된 사별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곳을 통해 사별 13년 차인 또래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납니다. 생전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그녀는 그 당시 나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릴 것 같은 사람이었고, 나는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던 깊은 상실감과 슬픔을 그녀 앞에서 감추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그녀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때 그녀의 존재가 나의 위로가 된 것처럼, 저는 이 책과 책에 소개된 25명의 사별자가 배우자를 잃고 상실의 슬픔을 겪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서점에 진열된 '나는 사별하였다'
책이 서점판매대에 놓이게 되니 장례식부터 책이 시작되던 순간과 그 후 벌어진 일들이 영화처럼 회상되더군요. 거듭된 저의 거절에도 책을 만들어보자며 저를 설득하셨던 임규홍 교수님도 생각나고,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책을 만드는 일을 같이 해주겠다던 친구도 생각났습니다. 원고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저는 이 책이 과연 세상에 내놓을만한 책인가? 누군가에게 도움 될 만한 책일까? 싶은 우려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를 모르는 다수의 분들이 글을 볼 수 있도록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로 마음먹고, 브런치 작가신청을 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신 후 세 번째 시도에 간신히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일라이어드님과 저는 이미 작성한 원고를 매거진을 통해 공동으로 브런치에 연재했고, 브런치 공모전에 축약된 브런치 북으로 만들어 응모했습니다. 그 책은 브런치 공모전에서 당선되지 못했지만 5일정도 ‘브런치가 추천하는 브런치북’으로 메인에 노출되었습니다. ‘브런치가 추천하는 브런치북’이라는 타이틀은 상금이나 명예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이 세상에 내놓을만한 책인가? 과연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이 될까?’ 라는 저희의 질문에 브런치가 보내 준 대답이자 응원으로 느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브런치 !!!
브런치의 응원에 힘입어 저희는 교정을 마친 최종 원고와 출판기획안을 23곳의 출판사에 보냈고, 23번째 출판사인 꽃자리 출판사를 통해서 배우자 사별 가이드 북인 ‘나는 사별하였다’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던 날, 제 마음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글을 쓰는 게 본업도 아닌데 저의 가장 큰 아픔인 사별을 주제로 난생처음 책을 써서 세상에 내놓았으니 제 마음이 복잡한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거운 짐을 벗은 것처럼 가볍고 마음이 벅차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우울과 무거움, 회한이 몰려왔습니다. 그날 밤 저는 남편의 사진을 앞에 두고 서럽게 혼자 울었습니다. 제가 사별에 대한 책을 쓰는지 조차도 몰랐다가 책 출간 소식을 들은 저의 지인들은 제게 “축하해”라는 말을 하려다 말고 멈칫하게 된다고 합니다. 주제가 저의 사별이니 축하한다고 말해도 되나 싶은 거겠죠. 사별 후 저를 걱정하고 아끼는 많은 지인들은 가끔씩 제게 “잘 지내?”라고 묻곤 합니다. 어떤 때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고 어떤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대답하기가 싫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잘 지내?”라는 그들의 질문에 제가 드리는 대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는 분들의 죽음을 거듭 겪어야 했고, 매번 나이에 비해 빠른 사별을 경험했습니다. 제게 닥친 불행과 슬픔은 제가 원했던 일도 아니고 제가 만든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매번 그로 인한 고통을 피할 수도 없어 온전히 겪어내야 했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겪은 불행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겪어야 했던 불행과 슬픔이 나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그 불행과 그 슬픔이
나 자신과 내가 사는 세상에 무엇이 되게 할 수 있는지는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이 책 ‘나는 사별하였다’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제가 겪어야 했던 사별이 제 자신과 제가 속한 세상에 위로가 되게 하고 싶은 저의 ‘의지’입니다. 그러니 저는 기꺼이 여러분에게 “축하해”라는 말을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