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선배 한 분이 33년을 일한 직장에서 퇴직했다.
수많은 책임을 내려놓고, 익숙했을 장소를 떠나는 선배는 홀가분해 보였지만 다소 허전해 보였다. “이삼십대는 뭣도 모르면서 청년의 열정으로 일을 배웠고, 사십 대는 맡겨지는 일에 최선을 다했더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어리바리했던 막내가 조직의 노련한 수장이 되었더라. 지난 33년 내게 주신 기회와 함께 해 준 동료들에게 감사한다.”라고 퇴직 소감을 말하던 선배의 내면에는 익숙했던 일에 대한 미련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막연한 설렘과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듯 보였다. 나는 끝과 시작 사이에 서 있는 선배에게 특별한 퇴직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인생의 한 시절을 마감하고 또 한시절을 다시 시작하는 선배에게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며칠을 고민한 후, 나는 선배에게 제안했다. “저랑 봄 마중 가시죠!”
매일 바삐 사는 대부분 도시인은 뉴스의 일기예보를 통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아파트 뜰에 핀 산수유나 목련꽃을 올려 보며 봄이 왔음을 깨닫는다. 나는 선배에게 올해는 봄이 오길 기다리지 말고, 어딘가쯤 오고 있을 봄을 우리가 먼저 마중하자고 제안했다. 선배는 흔쾌히 응했고, 나는 선배를 위한 ‘봄 마중’ 여행계획을 세웠다.
금요일 저녁 7시 우리는 전라도 구례로 출발했다. 3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더니 밤 10시쯤 구례 숙소에 도착했다. 구례는 7개의 면으로 구성된 작은 읍으로 북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남쪽으로 광양시와 순천시, 동쪽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서쪽으로 곡성군과 접하고 있어서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곳이다. 뒷배로 지리산을 두고 앞배로 섬진강을 품고 있어서 지리산 반달곰과 섬진강 수달이 지역의 상징이며, 산수유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봄을 만나려면 남쪽으로 더 내려가야 하지만 첫날 밤은 구례로 족하다. 늦은 밤 숙소의 온돌 바닥에 다리를 뻗고 편의점에서 구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며 나는 선배에게 말했다
“33년 수고했고 멋진 전반전이었어요. ”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봄을 만나러 광양으로 출발했다. 3월 중순쯤 광양의 홍쌍리 농원에서는 매화 축제가 열린다. 3월에 가장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소문처럼 마을에 매화꽃이 만개한 사진을 보면 별천지 같이 느껴져서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구례에서 40분정도 섬진강을 따라 861번 국도를 달리는데 강물에 반짝이는 아침햇살과 강바람이 창문을 두드렸다. 아직 벚꽃잎이 휘날리는 길은 아니지만 창문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올드팝을 따라 우리는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섬진강 봄바람에 봄 처녀가 되어간다. 선배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말했다.
“좋다”
아홉 시도 되지 않았는데 홍쌍리 농원 주차장은 벌써 만차였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개화 시기가 늦어지는지 매화꽃은 이제 막 피기 시작해 만개하기 전이었다. 사진처럼 몽환적인 마을 풍경은 아니었지만 희고 붉은 여러 종류의 매화꽃이 농원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농원의 굽은 길을 따라 오르면 유명한 시인들의 시비석과 명언들이 곳곳에 있어 매화꽃 한 송이에 시 한 수를 얹히니 봄날 아침이 감칠맛을 낸다. 청매실 농원과 인연이 깊었던 사람들의 조각상을 보며 이곳을 사랑했던 수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 중 꼭 한 명을 소개하라면 당연히 이곳을 일궈 낸 홍쌍리 명인이다.
팔십의 그녀는 매화꽃을 보러오는 이들에게 자신과 청매실 농원을 이렇게 소개한다.
“돌 사이 양지바른 곳에 매화 한 송이가 나풀대고 있는기라,
근데 꽃이 내를 보고 ‘엄마, 울지 말고 나랑 같이 살아’ 하는 것 같은기라.
매화꽃은 내 딸이고, 매실은 내 아들이라.
아침 이슬은 내 보석이제.
이 여인이 부러우면 꽃의 어매가 되어보소.
어둡고 괴로운 맘 섬진강에 다 띄어 보내고
가실 때는 매화향을 가슴 가득 보듬고 가이소.”
그녀의 굽은 손과 환한 미소, 그리고 짧은 글에서 나는 그녀가 살아온 긴 세월의 희노애락을 헤아려본다. 눈물과 한숨은 섬진강에 흘려 보냈을 것이고, 매화꽃이 주는 위로에 다시 웃고 다시 살 힘을 얻다 보니 매화어매가 되셨을게다. 우리는 매화가 둘러싸인 농원 한 가운 앉아 마을공동체에서 준비한 잔치국수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새콤달콤한 매실 아이스크림을 입안 가득 머금고 섬진교 건너에 있는 하동 평사리 박경리 토지 문학관으로 향했다.
우리 세대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박경리의 토지는 필독서 중 하나였다. 토지에는 서희, 길상이, 봉순이, 월선이, 용이, 임이네…. 등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를 가진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선택과 행동을 하며 그들의 인생을 만들고 그 인생들이 모여 곧 역사가 된다. 내가 박경리의 토지를 사랑하는 이유는 수많은 등장인물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작가는 독자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언 듯 보면 비난받을 행동을 하는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 책을 읽다 보면 점차 그 연유가 이해되고 설득되어 결국 대다수 등장 인물에게 연민을 품게 되고, 그 모습이 나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의 펜은 섬세하고 날카롭게 원고지에 인물을 묘사한 후, 뜨거운 애정과 연민을 담아 인물이 살아나도록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토지의 인물들은 허구이지만 마치 실존했던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평사리 마을과 최참판댁을 어슬렁거리며 나는 진짜 이곳에 그들이 살았던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독자를 향한 위대한 작가의 마술이고, 나는 박경리 작가의 최면에 제대로 걸려든 독자가 된다. 평사리 문학관의 뜰에는 키 작은 박경리 동상이 있고 받침석에는 유고시집의 제목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시구가 적혀 있다. 언제가 죽음을 마주한 순간에 나도 이 시구를 인용하고 싶다. 넓은 억양평야가 한 눈에 보이는 최참판댁 앞마당에서 선배와 나는 어린 시절처럼 굴렁쇠를 굴려보고 어설픈 제기차기도 해본다. 나는 허리를 구부린 채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다니는 나이든 선배를 향해 외친다. “어쭈! 좀 하는데….”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먹는 재미다. 그 지역의 소문난 음식을 먹어 주는 것이 낯선 여행자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화개장터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지리산의 산채나물, 섬진강의 재첩과 참게요리, 은어 튀김 등 화개장터의 메뉴판을 보며 잠시 고민을 하다 우리는 참게탕을 먹기로 했다. 국물 한 입을 떠먹는 순간 캬! 소주 한 잔이 생각났으니, 술맛 모르는 사람도 술잔을 들게 할 탁월한 참맛이다. 우리는 참게탕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며 배부른 신음소리를 낸다.
참게탕을 먹고 나니 깔끔한 커피가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구례 목월빵집이 검색되었다. 목월빵집이 빵지순례 필수코스라 했고, 목월빵집을 가보지 않았다면 구례여행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목월빵집이 추구하는 가치는 단순한 수익이나 유명세가 아니라 상생이라고 했다. SNS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가보지 않을 수 없어 우리는 그곳으로 가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섰다. 목월빵집에는 그들만의 철학이 엿보이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모든 밀은 전날 제분하여 다음 날 사용하며 통곡을 제분한 전립분을 사용합니다.
구례 농부들의 식재료로 빵을 만듭니다. 모든 빵에는 계란과 우유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매일 함께 숨 쉬는 발효종으로 자연 발효하여 빵을 만듭니다. 일부 빵에만 0.1%의 이스트나 버터와 설탕을 소량 사용합니다.”
그래서인지 목월빵집의 빵들은 거칠고 투박했다. 첫맛은 담백하고 오래 씹어야 겨우 단맛이 느껴졌다. 오래 보아 좋은 사람과 오래 곱씹어야 단맛이 나는 빵을 먹고 있자니 ‘오래’라는 단어가 문득 좋아진다. 부디 이 빵집과 그들의 철학이 오래되길 ....
호밀빵도 소화할 겸 우리는 구례 명소인 사성암에 올라보기로 했다. 사성암은 높이 20m의 아찔한 절벽을 활용해 독특한 기법으로 건축한 암자다. 531m의 오산 정상에 위치해서 원래 오산암이라고 불리는데 4명의 고승인 의상·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국선사가 수도한 곳이라 하여 지금은 사성암이라고 불린다. 구례에 가면 이곳에 가보길 추천한다. 이유는 아찔한 절벽에 붙은 파격적 건축물도 볼 수 있지만, 하동까지 이어지는 긴 섬진강과 구례평야, 그 너머 웅장하게 늘어진 지리산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배는 지리산을 넘지 못한 구름이 섬진강을 따라 둥둥 흐르는 풍경이 맘에 든다며 사진을 찍었고, 나는 구름에 심취한 선배를 사진 찍었다.
저녁은 구례장터에 있는 동아식당에서 가오리찜을 먹었다. 오래된 식당에 오래된 물건들과 오래된 주인장이 있고, 오래된 비법의 가오리찜과 돼지 족탕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오래된 것들 속에 낡음과 맛있음과 그리움이 공존해서 막걸리 한잔에 취기와 수다가 무르익는 봄밤이다. 아마도 늙은 주인장의 기력이 다하면 낡은 동아식당은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이 문득 아쉬운 밤이다. 우리의 시간도 머지않아 사라지겠지.
다음 날 아침은 구례 5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구례는 3일과 8일에 5일장이 열리는데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과 각종 물건으로 장터가 북적북적하다. 씨앗과 모종, 봄나물과 봄꽃, 신선한 생선과 제철 과일도 보인다. 도시 시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지리산의 산나물과 야생화, 봄나물을 파는 쭈그린 할매들과 장화 신은 아제, 몸빼 입은 아지매도 보인다. 1시간째 손님을 기다렸다는 할매의 도토리묵을 마수걸이해 구례장터에서 가장 맛있다는 해장국집에 들어가 소머리국밥을 시켰다. 할매의 도토리묵은 졸깃하니 기분 좋은 떫은맛이 났고, 소머리 국밥은 누린내 없는 구수한 맛이 났다. 평소 아침을 야채주스 한잔으로 가볍게 먹는다는 선배는 “야! 이거 진짜 맛있다.”를 연발하며 묵과 국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5일장을 구경하느라 봄비에 운동화가 다 젖어 신발노점을 기웃거렸더니, 반짝이가 박힌 파란색 고무신을 가리키며 신발 파는 아지매가 말한다.
“이 고무신이 빗물에도 꺼떡 없당게. 이불빨래 헐 때도 요거 신고 허믄 딱 여!”
눈치 빠른 상인의 ‘꺼떡 없다’는 한마디에 나는 젖은 운동화를 벗고, 맨발에 반짝이 고무신을 신은 채 구례 화엄사로 향했다. 3월 중순에만 볼 수 있는 화엄사의 홍매화를 보고 싶었다. 화엄사의 각황전은 탱화가 그려지지 않은 무채색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인데 3월이면 그 옆에 붉은 홍매화가 핀다. 홍쌍리 매화농원에서 피었더라면 그저 붉은 매화꽃중 하나일뿐인데, 화엄사의 각황전 옆에서 피면 그 수려함이 돋보인다. 사람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으니, 화엄사의 홍매화처럼 살고 싶다면 자신이 어디에서 가진 재능을 피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 올해 홍매화는 아직 겨울이다. 어느 남자가 꽃이 피지 않은 홍매를 보면 말한다. “내 너를 보러 여까지 왔건만, 너는 아직 이구나!” 이심전심이다. 사랑은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다. 봄비가 내리는 화엄사에 앉아 처마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낙하하는 소리를 들으며 비구름이 앉은 지리산을 보는 맛이 참 좋다. 봄을 이루는 것들이 어디 꽃뿐이겠는가? 봄바람에 흔들리고, 아직 열리지 않은 꽃봉오리에 봄비가 입을 맞춰야 꽃이 잠을 깨고 피는게지. 그러니 봄 마중에 봄비를 만나는 일은 당연지사다.
마지막 봄 마중 코스는 산수유마을이다. 봄 하면 노란 개나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봄을 시작하는 첫 노랑은 산수유다. 산수유 꽃은 자세히 보아야 꽃송이가 보일 만큼 작지만, 꽃샘추위에도 꽃을 피울 만큼 야무지고 부지런한 꽃이다. 빗방울이 맺힌 산수유 꽃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니 봄의 산중마을은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별천지가 된다. 노란 산수유 꽃을 가까이 서서 바라보자니 눈동자가 노랗게 물들고 마음에 봄이 스며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선배에게 봄 마중이 어땠는지 물었다. 선배는 “좋았지” 대답했다. 나는 무엇이 좋더냐고 되물었다. 선배는 다시 대답했다.
“미지근한 봄바람, 축축한 봄비, 비구름 앉은 지리산, 향기를 팔지 않은 매화, 이슬 맺힌 산수유 꽃, 가오리찜과 참게탕, 할매의 도토리묵과 해장국, 봄이 가득 담긴 구례5일장
그리고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