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입니다만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던 말이 있다. ‘첫인상 좋지 않았는데 겪어보니 의외로 착하다.’ 첫인상이 좋지 않은 것이야 타고난 외모를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그리고 ‘의외로’란 수식어가 붙었지만 어쨌든 결론은 착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착한 사람은 아니다. 가끔씩 혼자서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날뻔한 적이 종종 있었다. 상대방의 미흡한 운전 실력, 주행 감각으로 인하여 나뿐만 아니라 당시 도로에 있던 차들의 창문이 내려가고, 서로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절대로 창문을 내리지 않는다. 클락션도 거의 누르지 않는다. 정말 내 차선으로 침범하여 급박한 상황에서는 클락션을 사용하지만 가급적 그 상황을 피한다. 혼자 있을 때에도 창문을 내리지 않고, 동승자가 있으면 더더욱 그런 상황을 피한다. 클락션 누르는 것을 지양하고, 창문도 내리지 않는 내 모습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동승자들이 있었다. "아니 이럴 때 누르라고 클락션이 있는 건데 이 상황에서 안 누른다고? 착한데?" 클락션을 누르지 않았다고 착하다고 한다. 이어서 "나 같았으면 벌써 창문 내려서 한 소리했다."라고 한다. 아찔한 순간은 맞지만 결과적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된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한다. 그래서 만인에게 무조건 착하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아니었다.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맞지만,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나쁘게 사는 것보다는 착하게 사는 것이 낫다. 하지만 굳이 본인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착하게 행동하다가는 정체성의 혼란과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착하게 대하지만, 반대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차갑게 대할 수도 있다. 나와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착함의 정도'가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이 나에 대한 '착하다'라고 하는 것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착하게 하면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좋지 않은 첫인상을 상쇄할 수단으로 '착함'에 집중했던 것이다. 제목 그대로 착하지도 않은 사람이 억지로 착한 척을 하다가 진짜로 착해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 시간에 성선설, 성악설, 성무성악설 등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착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착해지려면 주변 환경도 착한 사람들, 선한 분위기로 세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말도 예쁘게 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한순간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늘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다. 착해지려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 흡사 주문을 거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착한 척에 대해 글을 쓰면서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진짜 착한 사람인가' 이왕 사는 것 나쁘게 사는 것보다는 착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내용을 있어 보이게 쓰려다 보니 어제의 '건강한 척하다가 건강해졌다'는 술술 썼는데 오늘은 자꾸 막힌다. 아직도 착해지려면 멀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