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may kiss the bride!"
♪♬... 내가 좋아하는, 아니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식전 음원은 전적으로 신랑에게 맡겨서 무슨 노래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까먹지 않고 넣어준 고마운 P. 신부 대기실이 아닌 '포토존'으로 명한 곳에서 부케를 들고 앉아 있다가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쪽을 바라봤다. 푸드테이블 근처라서 하객분들이 모여있다. 친척들과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와인도 한 잔 하고, 음료도 한 잔 하고, 쿠키도 먹으면서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데 다들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오늘까지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여기에서 결혼하도록 준비했던 결정과 시간들이 너무 뿌듯하고 보람되게 느껴졌다.
아직 오후 3시가 되기 전, 사회자님과 얘기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다가온다. "어차피 올 사람은 다 온 거 같은데, 그냥 빨리 시작하자!" 웨딩홀이었으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지만, 우리가 대관했던 한옥은 전일 대관으로 우리만 사용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여유가 있어서 좋았고, 반드시 3시에 시작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아, 지금 시작할까요?" 하더니 냉큼 사회자 보면대로 달려가서 멘트를 준비하는 사회자님. 그렇게 우리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신부 B양과 신랑 P군의 결혼식이 시작되겠습니다. 하객분들은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인 신랑 P에게 식이 조금 일찍 시작한다고 말해주자, 어디에 서있을까 하고 물어본다. "저.. 저기?"
야외 웨딩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알아보면 플로리스트와 웨딩 디렉터 업체가 협업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업체 규모가 클수록 가격대가 높아지다 보니,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결혼식 비용이 아니다 싶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 백 단위가 기본으로 말이 오가더라. (어떤 사람들은 꽃장식에 천 단위를 쓰지만...) 그래서 개인 사업체이지만 예쁘게 잘 꾸며 주는 업체로,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한 업체를 여기저기 알아봤다. 그렇게 계속 발품을 팔다가 고민 끝에 결정한 플로리스트.
플로리스트와 애초에 계약을 할 때 '예식 흐름이 어렵지 않도록 도와준다'라고 하셨는데, 사실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계약을 진행했던 3월에는, 예쁘게 잘해주기만 하면 되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약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결혼식을 준비해 본 적도 없는, 특히 야외 웨딩은 참석해 본 적도 없는 나는 결혼식에 신경 쓸 게 이렇게 많을지 상상이나 했을까.
예식 전에 내가 준비했던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예식 전에 진행했던 리허설이며 혼주석 배치까지 우리가 챙겨야 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큰 문제없이 잘 끝났고, 꽃장식이며 푸드 테이블 등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예식 전에 상의하지 못했던 대기 위치는 그냥 적당히 하객들 뒤에서 신랑이 앞에, 나는 아빠랑 신랑 뒤에서 대기하면서 준비했다.
연세가 높으신 친척들이 많이 참석할 예정이었기에, 식순은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짜도록 했다. 주례는 생략하고, 허리가 조금 불편하신 엄마를 위해 아빠를 제외한 혼주들은 혼주석에 앉아서 시작하도록 했다. 식순은 [혼주 화촉점화 - 신랑 입장 - 신부 입장 - 맞절 - 혼인 서약 - 예물 교환 - 성혼 선언 - 신랑 아버님 축사 - 신부 친구 축사 - 행진] 이렇게 진행했다. 음원은 너무 흔하게 사용하는 거보다,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 음악이나 듣다가 어울린만한 음원으로 찾아서 준비했는데 식순이 한 개씩 넘어갈 때마다 뭔가 뿌듯했다.
"이제 두 사람의 영원한 행복과 사랑을 약속하는 증표인 결혼반지를 교환하는 순서를 갖겠습니다." 너무 기다렸던 예물 교환 순서. 우리는 반지를 하고 나서 사이즈만 체크하고 케이스에 계속 보관했고, 그날 이후로 결혼식에 두 번째로 보게 되었다. 예물 전달 방식에 대해 꽤나 고민을 했었다. 화동이 하면 귀엽기도 하고, 분위기도 뭔가 통통 튀면서 업이 되는 거 같아 친척 언니에게 부탁할까도 했었다. 물론 영국이었다면 베스트맨이 반지를 전달해 줬겠지만, 우리는 특별하게(혹은 어쩔 수 없이) 내 반지는 아버님이, 신랑 반지는 우리 아빠가 가지고 계셨다가 전달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이어졌던 아버님 축사. 신랑에게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서프라이즈가 되길 바랐으나, 아버님이 축사를 신랑에게 보내는 바람에 이미 내용을 다 알아버렸다. 영어로 작성하신 축사는 내가 한국어로 번역을 해서 사회자에게 전달했고, 아버님이 영어로 읽고 사회자가 통역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아버님과는 영상통화로만 뵙다가, 결혼식 며칠 전에 처음 뵀다. 처음 만났을 때 "My new daughter!" 하시면서 밝게 웃어주셨던 아버님! 유쾌하시고, 요리도 정말 잘하시고, 한편으로는 조금 엉뚱하기도 하다. 안 그래도 P가 아버님의 이 엉뚱함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본에 맞춰서 읽지 않고 갑자기 하고 싶은 농담을 추가하신다. "Oh well, he cooked North Korean food for me."
P가 처음으로 나랑 결혼하고 싶다고 아버님께 얘기하던 날, 아버님께 근사하게 저녁을 차려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는데 농담을 하고 싶으셨나 보다. "No, dad. Stick to the script!" 대본에 맞게 읽으라고 하는 P의 말에, 아버님 눈이 다시 대본으로 간다. 이에 우리 사회자님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자, 하하, 우리 아버님이 제가 방금 통역한 부분을 다시 한번 읽으셨습니다." 하면서 위트있게 넘어갔다.
신랑신부 행진 전 마지막 순서인 내 친구들의 축사.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인 우리들은 작년 12월, 올해 8월, 그리고 10월을 마지막으로 세 명 다 결혼을 했다. 가족처럼 친한 사이라 결혼식마다 축사를 했고, 내 결혼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두 번씩 축사를 해서 오늘 축사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기세 등등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친구 한 명이 이미 얼굴과 코가 벌겋게 되어 나왔다. "아.. 망했네..." '망해서 망했다'는게 아니라 친구 축사를 듣다가 엉엉 울 내 모습이 그려져서, 축사하는 동안 P에게 통역해 주는 척하면서 최대한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잘 버티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줘서 정말 고마워." 하는데 세 명다.. 아니 우리 엄마까지 눈물샘이 폭발했다. 으이그.
친구들의 축사가 끝나고, 우리는 이제 마지막으로 신랑신부 행진을 할 차례였다. 코가 많이 빨갛게 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하객을 바라보고 섰다. "Are you guys ready?" "YES!" 사회자의 행진 큐사인에 맞춰 우리가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가, 그리고 결혼식의 마지막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진에 잘 찍히려면 예쁘게 잘 걸어야 하는데, 구두는 높고 잔디밭이 살짝 경사가 져서 엉금엉금 가는 느낌으로 걷게 되었다. 다른 신부들은 하객들에게 인사도 하고 여유가 있던데, 나는 걷느라 바빴던 거 같다.
예식 이틀 전에 갑자기 날씨 예보가 바뀌어서 결혼식 날 비가 온다고 했었다. 그리고 날씨 예보처럼 비가 왔는데, 예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그 순간에 맞춰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식사하고 다들 귀가하실 때까지도 비가 또 안 오다가, 저녁 6시 정도가 되니까 정말 말 그대로 폭우가 쏟아졌다. 엄마 아빠는 귀가한 후 친척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는데, 모두 하시는 말씀이 너무 멀어서 왜 이렇게 멀리 잡았나 하시면서 오셨는데, 막상 가서 보니 풍경도 분위기도 너무 좋아서 좋았다. 그리고 집에 가고 있으니까 비가 쏟아져서 다행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었다.
P의 한국 비자 때문에 우리는 결혼식 몇 달 전에 이미 혼인신고를 진행했다. 남들은 결혼식 하고서도 몇 년 동안 안 한다는 그 혼인신고.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던 그 주에 내 인생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했던 것 같다. 흔히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이 남자랑 내가 평생을..?" 원래 이런 고민은 여자만 하는 걸까? P는 그런 내색은커녕, 오히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굉장히 속상해했다.
그때 너무 생각을 많이 한 탓에 결혼식은 온전히 행사를 어떻게 하면 잘 치룰까에 초점을 맞춰서 준비했던 것 같다. 결혼식 1-2주 전에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쉬고 싶은데, 이것 저것 준비하고 정리하면 새벽이 된다. 하루는 너무 짜증이 나서 "This wedding is no fun!"라며 P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돼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린애처럼 얘기하고 바보 같아 보여서 웃음이 나오는데, 그때는 나름 꽤 진지하게(?) 투덜거렸다. 속 깊은 P는 철부지 같은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하는데 너무 미안해서 그냥 꽉 안아줬다.
결혼식이 끝나고 몇 주 뒤에 신혼여행도 가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사실, 지금 P는 잠시 영국으로 가서 짐 정리도 하고 하느라 더 바빴다.) 11월 초에 나오기로 한 결혼식 원본 사진이 나왔다는 메일이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예뻐서 다행이었다. 물론 종종 내 표정이 굳어서 후회되는 것도 많지만,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던 우리의 결혼식. 앞서 너무 힘들었다고 얘기했지만(물론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다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내년 1월은 돼야 만날 우리 신랑. 앞으로 부부로서 살면서 삶의 방식이 많이 달라질 텐데, 지금처럼 사랑하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