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니 브런치에 글이 쌓인다
10월 중순, 2년간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하고 신혼여행과 이삿짐 정리로 바쁘다가, 내가 '퇴사'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11월부터였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출근을 할 곳이 없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내가 출근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면 엄마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갈 회사가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 줄 알아?" 역시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다. 퇴사를 결정한 이유를 여러 가지였다. 일을 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 보스가 바뀌면서 전체적인 변화, 그 변화로 인한 업무량 증가, 신랑 P의 영국 귀국...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냥 잠시 쉬어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데 퇴사를 한 적은 처음인데, 내가 이번에 배운 교훈은 앞으로 절대 그렇게 '하지 말자'이다. 고3 수능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후로 나는 일을 쉰 적이 없었다. 워킹홀리데이로 떠났던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초기 정착기 시절, 그리고 영국에서 귀국 후 2주 자가격리 한 뒤 취직 준비 한 달 정도 했을 때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 내가 다음 주면 퇴사한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어떤 사람들은 퇴사하고도 잘 지낸다는데 나는 영 눈치도 보이는 것 같고, 당장 이직하지도 못하지만 채용 사이트를 계속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퇴사하고 가장 큰 문제는, 내게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집 - 회사 - 집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크게 성취감 같은 것에 대해 느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하자라는 신념으로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퇴사를 하고 나서 느낀 점은 일/회사/직업이라는 것이 who I am을 100%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성취감과 자존감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적어도 나에겐)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10월 말까지는 신랑과 같이 시간을 보내서 퇴사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는데, 11월이 되니까 다르다. 집에서 하루 종일 있으니 내가 뭔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신랑이 한국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고, 비슷한 시간대에 근무하는 곳으로 이직을 해야 하니 나는 당장을 이직을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브런치를 생각했다. 그래, 그럼 글을 남겨보자.
사람마다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소소한 성취감을 느끼고자 글을 쓴다. 한 개라도 고이 써서 발행을 하게 되면, 나는 내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그래도 뭔가를 열심히 했구나 하는 그 소소한 성취감을 느낀다. 나의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 글을 쓰려고, 바쁘게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처음 블로그 형식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내가 아일랜드에 있을 때였다. Wordpress라고 하는 해외 블로그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뭔가를 써서 남기기 시작했다. 조회수가 높고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 공개는 되어 있으나 단순히 나를 위한 공간이었다. 뭔가 막연히 걱정이 될 때 이렇게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생각이 정리되면서 나만의 결론이 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글을 썼고, 그 블로그에는 내가 생각이 많거나, 우울하거나, 때로는 누군가에겐 말 못 할 거리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여기에 계신 작가님들도 제 나름대로의 이유로 시작하셨을 것이다.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서, 넋두리를 하고서, 혹은 소설을 써보고 싶어서. 이유를 막론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하나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글을 읽고 같이 공유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또한 참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이렇게 짧은 글을 남겨본다. 나의 소소한 성취감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