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엄마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떡할 거야? 자식들이 보내는 그 짧은 질문과, 따뜻한 답변들. 인터넷 속 유행은 대부분 자극적이고 유해하지만 가끔은 이렇듯 더 무너질 기운도 없는 만큼 낡아버린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차마 저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바퀴벌레가 된 딸도 사랑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올까 봐 무서웠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는 어느날 침대에서 눈을 뜨고 본인이 바퀴벌레로 변했음을 알게 된다. 바퀴벌레로 변한 아들을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돕지만, 결국 그들은 그레고르가 죽는 그 순간 안도와 기쁨같은, 긍정적인 감정에 비로소 미래를 그린다.
대학생 시절 이 책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파멸적인 줄거리를 가진 소설들을 좋아하고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접한 소설이라는 건 대부분 의무교육의 산물이었기에 그 글들을 읽으며 대단한 성찰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문장을 분해하고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며 소설 그 자체의 의미라던가, 그런 걸 해체하기 급급했던 것 같다. 이 책 역시 그랬다.
8시 수업을 듣기 위해 6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나는 무거운 가방에, 안 그래도 무거운 노트북을 싣고, 또 그곳에 이 책 한 권을 넣었다. 수업 시간에는 졸기에 바빴다. 따뜻하고 낯선 공간에서 한참을 까무룩 졸다 보면 가끔 죄스러운 마음에 정신을 차리자고 수업에 집중하자고 스스로 의지를 다지고는 했다. 이 책을 읽는 수업을 가르치던 교수님은 외국인이셨다. 한국에 오래 살았지만 그래도 우리와 다른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에, 뭐 그렇다기보다는 그분의 깊은 성찰에 가끔 놀랐다. 관념적인 생각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사회학 수업을 들으며 마주하게 된 세상은 절망과 차별 그리고 이따금 마주하는 의미 없는 희망 같은 것들이 혼재된 존재처럼 와닿았다. 나는 그래서 꽤 오래 우울했다.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하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그레고르는 바퀴벌레로 변하고 점점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잃어간다. 그래서 그는 바퀴벌레로 변했음에도 그럭저럭 살아갔다. 이전에는 먹지 않던 썩은 음식 같은 것들에 황홀을 느끼며, 또 이전에 닿을 수 없던 천장에 붙어 평화를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사회인으로서, 사람으로서의 죽음에 가까워진다.
책 속에서 그레고르는 서술한다. 그 죽음이 기꺼운 것처럼. 날개에 박혀 거슬리는 사과의 고통을 비로소 잊을 수 있음에 기뻐하며.
나는 가끔 우울하다. 성인이 되고 맞이한 수많은 논제와 문제들이 가끔 발목을 잡고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이 세상은 왜 이럴까, 크게 한탄하다가도 귀여운 강아지나 도마뱀 영상 같은 것들을 보고 금방 잊어버린다. 잊게 된다기보다 잊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세상을 바꾸지 못하니까. 나를 괴롭게 할 뿐이니까.
변신을 읽던 수업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바퀴벌레가 되어 점점 죽어가는 그레고르는, 더 이상 가정을 책임지지 못하고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며(그러니까 돈을 못 버는)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하는 존재에 대한 비유라고.
28살에 다시 읽은 변신은, 보내지 못한 그 짧은 카톡에 대한 변명 같았다. 바퀴벌레로 변한 나를 그대로 사랑해 주는 가족임을 알지만, 언제까지 나는 그저 나라는 존재로서 사랑받을 수 있을까? 평생이라는 따뜻한 대답이 돌아온들 그레고르한테는 위안이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레고르는 바퀴벌레가 된 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방에 갇힌 채 그대로 죽었다. 그레고르는 인간답게 사고하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인간이 무가치해지는 건 사고하지 않음 때문이 아닐까? 내가 보냈어야 하는 카톡은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가 아니라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살아갈지'와 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괴롭더라도 사고하고, 뒤집힌 바퀴벌레가 되어 꿈틀거릴지언정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궁리하자.
글을 쓰며 문득, 나의 미래는 무한하지만 그레고르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속상해졌다. 나는 미래의 반짝거리는 꿈이 가득했던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서, 그때 하던 독후감 숙제를 다시 해보려고 한다.
...그레고르는 본인이 바퀴벌레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그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그저 시체처럼 누워 이 모든 순간을 회피하기 위해, 그래서 눈을 뜨면 다시 본인을 반겨주는 가족들에게 '나쁜 꿈을 꾸었어'라고 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괴로웠다. 분명 그레고르 그 본인이 느끼기에 아주 충분히. 그리고 ...그레고르는 본인이 바퀴벌레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그는 다리를 움직이고 날개를 폈다. 낯선 감각. 이전까지 싫어했던 음식들이 향기로웠다. 그는 생각했다. 빨리 달릴 수 있겠어. 그리고 그는 인정했다. 바퀴벌레로서의 그레고르에게는 더 안락하고, 더 쾌적한 다른 집이 필요하다고.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방문 열쇠를 돌렸던 치악력으로 창문을 열었다. 좁고 꼈지만 그레고르는 어느새 익숙해진 다리들로 몸을 지지하며 등과 배를 최대한 맞닿으며 그 좁은 방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그는 하염없이, 출근길 기차에서 늘 꿈꾸었던 것처럼 하염없이 이동했다. 멈추지도 않았고 내릴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도착한 그레고르만의 유토피아에서, 어쩐지 욱신거리는 날개를 펼쳤다. 동그란 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레고르는 누구도 알아볼 수 없었지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난다고 느꼈을 때, 발밑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나를 받쳐주는 땅이 없어도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어. 그레고르는 깨달았다. 흉측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이루던 모든 것들이 각기 다른 쓸모가 있음을, 그래서 이전과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