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전공생의 전시 준비 A to Z
5일간의 전시가 끝나고 철수를 했다. 전시를 하는 내내 구름 위를 나는 것만 같았는데 철수를 하던 날에는 엄마와 나 둘이었다. 이 전시는 나에게 과제전 그 이상이었다. 한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친 전적이 있었기에, 이 전시는 나에게 유독 더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무사히 끝내지 못하고 이번에도 도망쳐버린다면 나는 영원히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패배자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고난과 역경 그 자체였다. 1년만에 복학을 한 나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5개의 전공을 신청했다. 휴학 하는동안 디자인이 너무 하고싶었고 처음 몇 주는 그럭저럭 할만했다. 4월이 되고는 내내 울었다. 매일같이 두시간에서 세시간씩 자며 하루에 왕복 세시간씩 통학을 하는 삶이 감당이 안됐다. 친구들에게 내 괴로움을 말하고 싶었지만, 내 너무 어두운 면에 겁을 먹을까 무서웠다. 또한 지난 이년의 시행착오 끝에 어느 누구도 내 감정에 온전히 동화할 수 없다는걸 알게되었고 그 모든것을 혼자 삼켰다. 삼켜지지 않을때면 글을 썼고, 이번 북아트 작업들은 그런 내 글들의 구체화 작업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썼고, 그게 소설이든 수필이든 사실은 내 감정의 배설물들이었다. 그런 감정의 유효기간은 짧기 때문에 끝내지 못한 러프한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글들 중 작업을 하고 싶은 글들을 추려냈다. 얼마나 완성도가 있냐는 기준보다는 지금의 내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기준으로 골랐다.
박주형은 내 부정적인 감정의 배출구였다. 그 책을 작업할 때가 가장 괴로웠다. 내면의 극도로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든 배출하고 싶어서 그 책을 만들었다. 줄거리를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한번에 써내려갔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등장인물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응어리들을 배출하니 한결 나았지만, 내가 이런 응어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게 너무 싫어서 조금 울기도 했다.
A to Z는 작년 중도휴학을 했을 당시에 썼던 글이었다. 중도휴학의 이유가 이별때문은 아니었는데, 막상 시간이 많아지니 오히려 괜찮았던 이별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연애가 끝난지 삼개월도 더 지난 후였다. 그때는 내가 너무 끔찍해서 아무도 몰래 글을 썼다. 이별의 상대방이 아직 식지않은 내 마음에 놀랄까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어째서 나만 이렇게 미련스러운지 그 이유를 알고싶어서 내 입장에서,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썼던 글이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는데 그 글을 쓰고 나니 내가 얼마나 못난 인간인지 깨닫게 되었고 더 힘들었다.
그리고 이 글 덕분에 북아트 작업에 탄력이 붙었다. 사실 그림으로 글을 대체하는것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와닿지도 않았다. 또 어떻게 해야할지 감조차 잡지 못했었다. 그나마 이 글을 쓰며 여러가지 생각을 해왔고 그런 추상적인 감정들을 최대한 그림으로 표현해보려고 했다. 결과물을 내 손으로 받아본 후 그림이 가지는 힘에 대해 깨달았다. 백마디 말보다 몇컷의 그림이 가져다주는 잔잔한 여운이 참 좋았다.
잃어가는것은 치매에 걸린 소녀의 이야기로 중학교때 썼던 글이었다. 보통 글을 썼던 기억이 조금씩 남아있는데 이 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도 없다. 또한 저 글을 최근에 발견하고 ‘내가 이런 유치한 글을 썼었다니’하며 놀라기도 했다. 이 작업은 탄력을 받는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한주가 넘게 처음 몇페이지를 만지면서도 내가 어떤 표현을 하고싶은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제목도 정하지 못한 채로 어버이날을 맞아 할머니댁에 갔다. 맞벌이로 바쁘셨던 부모님 때문에 나는 어린시절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할머니는 나에게 어머니이자 아버지이자 가장 친한 친구셨는데, 대학에 가고 바빠진 이후 영 찾아 뵙지를 못했다. 내가 대학생이 된 후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셨다. 그리고 최근, 상태가 많이 안좋아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전에 갔을땐 가끔 기억이 오락가락 하셔도 내 이름도 불러주시고, 또 나랑은 대화도 했었는데. 이번에 찾아 뵌 할머니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온 얼굴에 멍이 들어있었고, 얼굴에 살이 쫙 빠진채 내가 불러도 듣지 못하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조금만 초조하면 계속 하품을 했고 이상한 냄새가 났다. 이 모든 변화가 내 소홀함이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그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내가 충격을 받을까 내 눈치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무거웠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할머니를 부축하고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모든 순간에도 내 마음은 나락이었다. 그날은 과제를 하겠다는 핑계로 24시 카페에 가서 많이 울었다. 마냥 울수는 없어서 과제를 했는데 통 막혀서 그려지지 않던 100페이지가량의 그림을 네시간만에 완성했다.
1367 2 1422는 고등학교때 썼던 글이었다. 수능을 앞두고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조선시대로 떨어진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글을 썼다. 이때쯤 부터는 끝내야겠다는 초조함에 이 전에 작업한 것 들만큼 생각과 시간을 쏟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녀는 어느날 길을 떠났다는 원래 미술을 전공하던 고등학생이 비현실적인 큰 사건에 휘말리며 속세를 떠나가는 이야기이다. 세계가 곧 멸망한다는것을 알게 된 소녀는 매일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자신의 일상에 환멸을 느끼며 모험을 찾아 떠난다. 이 글을 각색 할 때는 전공이고 뭐고 도망치고싶다는 생각에 잠식되어 있었다. 전시는 얼마 남지 않았고, 이 모든걸 해낼 자신이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는데 도망칠 이유가 없어서 누구라도 나에게 합당한 변명거리를 제시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해서 나온 책이다. 천재적인 그림을 그리던 소녀는 내가 꿈꾸는 내 모습이고, 그녀가 왜 사라졌을지 추측하는 사람들은 도망치고 싶다는 내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 책을 그리고 쓰며 만약 내가 도망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당시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죽었을 것이라는 결론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마지막에 완성한 ‘꿈’은 인쇄를 맡기는 날 완성했다. 정확히는 전시가 시작되기 3일 전 저녁이었다. 시간이 촉박해 이 책을 포기해야하나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러기에는 이미 품을 너무 많이 들였고 억지를 써서라도 완성을 하고 싶었다. 결국 인쇄소 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늦은시간 인쇄를 맡겼다.
이 책 역시 쳇바퀴같은 삶을 벗어나고싶었던 내 욕망의 결과물이었다. 정확히는 고등학교시절의 욕망이었다. 매일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학원을 왔다갔다 하며, 이게 내 운명인가. 그렇다면 참으로 초라하다, 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다들 수능공부를 하고 대학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모든것을 포기할 용기는 없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지만 항상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보기를 희망했다. 이 책의 내용도 그렇다. 운동을 좋아하고, 하기싫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나’는 어느날 매일같이 상상하던 꾸던 꿈을 현실에서 마주친다.
아마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게 ‘꿈’은 고작해야 원하던 대학에 가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것 따위였던 것 같다. 그런 꿈들은 이룬지 오래다. 지금 내가 꿈꾸는 것들도 언젠가는 마법처럼,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시를 하는 내내 꿈만같았다. 소중한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해준다는 만족감이 좋았다. 철수를 하던날은 여러모로 심란했다. 그날은 우울한 티를 내는 것 조차 조심스러워서 혼자 방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삼학년이 되고 졸업 후의 내 모습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졸업을 하면 대기업에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업을 하고 또 그 사업으로 모은 돈으로 젊은 창작자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 그리고 이번학기 수업을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내가 작가적인 작업을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디자인 말고 내 생각을 담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것이 너무 좋았다. 사실 1학년때까지 회화가 너무 좋아서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번 북아트 수업을 하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것만이 작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가진것들, 내가 좋아하는것들로 내 작업을 더 많이 하고싶다. 글을쓰고,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고, 책을 만들고 그 모든것들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