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 만들기
2019년 미국 인턴을 결심하던 시절의 나는 대학교 4학년을 앞두고 있었다. 놀랍게도 4학년이 될 때까지 포트폴리오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인턴을 결심하고 난 뒤, 비교적 빨리 끝난 이력서 작성과 다르게 포트폴리오는 꽤나 오래 나를 괴롭혀왔다.
이 글에서는 2019년 겨울부터 2021년 겨울까지. 4학년과 졸업전시, 취준을 거치며 내가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이 과정에서 얻게 된 포트폴리오 제작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하도록 하겠다. 나는 맨땅에 헤딩을 넘어서서, 맨땅에 드릴질을 하며 100번이 넘게 포트폴리오를 고쳐왔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비교적 적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 있기를.
당시에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본 경험이 전무해서 나에게 가장 익숙했던 책의 형태로 판형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당시 잘했다고 생각했던 과제들을 열심히 조판했고 글 50% 그림 50%인 엉망진창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냈다. 모든 작업은 한 페이지 안에 쑤셔 넣었으며 작업의 프로세스는 모조리 배제하고 엉터리 목업 이미지들을 아-주 많이 첨부했다. 그리고 총 15개 가까이 되는 작업을 넣었다. 당시 포트폴리오 작업물의 개수를 채우기 위해 질보다 양을 택했었고 이건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
현재 사용 중인 포트폴리오와 겹치는 작업은 있지만 글, 레이아웃, 이미지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르다. 이때는 정말 '책'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던 것 같다.
21년 추가학기를 다니며 5년 만에(추가학기) 처음으로 우리 학교에서 실용적인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교수님까지 너무 좋은 분이셨어서 이 시기에 포트폴리오를 많이 손볼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들으며 내 포트폴리오의 규격, 구성, 콘텐츠... 그냥 무엇 하나 빠짐없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존의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재활용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처참히 실패하고, 정말 새로운 대지에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수업에서 난 두 가지 매체의 포트폴리오를 제작했다. 바로 웹과 pdf. 두 매체를 선택한 데에는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다들 그렇게 해서, 나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또한 당시 내가 원하던 회사 서류에 붙은 상태였기에 7일 안에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어야 했다. 분명 사랑했던 내 작업들이었는데, 회사에 제출을 하려니 작업들이 하나같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7일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냈고 그 안의 작업까지 모두 뜯어고치는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
회사의 희망고문과 교수님의 가르침 덕분에 포트폴리오에 대한 기준이 생겼고, 종강 때는 총 6개의 작업을 담은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었다. 지금 포트폴리오에 그대로 실린 내용이 꽤 있을 만큼 완성도 있게(내 기준에서) 만들었던 것 같다. 다만 포트폴리오의 매체, 콘텐츠 정리 방법 등에 대한 확신 없이 교수님의 피드백대로 수정만 해왔던 포트폴리오라서 이게 괜찮은 건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읽히는지에 대한 확신을 못했다. 말 그대로 '완성'만 했던 포트폴리오.
2021년 여름, 가을 내내 포트폴리오에 대한 걸 잊고 살다 미국 인턴을 다시 준비하게 되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에 재미가 들렸다. 이 포트폴리오로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되니 어디 있는지 몰라봤던 열정이 불타올랐다.
매일 조금씩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친구들과 피드백도 주고받으며 야금야금 완성도를 높여갔다. 같은 작업을 오래 보고 포트폴리오로 보기 쉽게 정리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능숙해졌다. 또한 매체별 특징이나 강조해야 될 부분에 대한 것도 자리 잡혀가기 시작했다.
나는 시각디자인과 기도 하고 외부활동이나 외주작업을 많이 해왔어서 작업량이 많았는데, 기존의 포멀 한 pdf 포트폴리오와 그나마 casual한 Behance 포트폴리오에도 담지 못하는 소소한 작업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또한 요즘 기업에서 지원자의 성향을 잘 알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선호한다고 하니 내 외향적인 성향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다른 매체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때 발견한 게 Adobe Portfolio다. Wix나 I'mweb처럼 웹사이트를 만드는 곳인데 Adobe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된다. 나는 마침 Adobe를 구독하고 있는 상황이라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Adobe Portfolio에서 웹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작업을 정리하고 업로드하고 미리보기를 꾸준히 반복하다 보니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게 마치 미니홈피 꾸미기처럼 느껴졌다. 내 작업을 한 군데에 모은다는 게 너무 재밌었고 매일같이 밤을 새워서 지금의 웹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되었다.
지인들에게 무진장 강조하지만 모바일 말고 웹으로 보시길 추천해요. 모바일로 보신다면 우측 상단에 보이지는 않지만 메뉴가 있습니다.
https://soheesohn.myportfolio.com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과정이 일단락되었다고 해서 영원히 끝난 건 아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작업은 끝이 없다. 주기적인 유지보수가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 포트폴리오로 대단한 곳에 취업했다거나 어떤 결과를 손에 얻은 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알게 됐다고 으스댔던 인사이트들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아직 남은 작업들과 수정사항도 산더미 같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했고 당장 내 맘에 드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나 자신이 대견하다. 아마 미국 인턴이라는 목표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또한 당시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내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는 작업에 대해 오래 생각했고 '글쓰기'와 연관 지어 포트폴리오의 주제 문장도 만들어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디자인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건 진짜 재미없는 일이다. 내가 포꾸(포트폴리오 꾸미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고 다니기는 했지만, 이미 끝난 작업을 요리조리 둘러보고 만져보는 건 정말 별로다. 그렇지만 이 무수한 끝난 작업 다시 보기를 통해 내가 어떤 디자이너인지, 내 강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오버 조금 보태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었다.
포트폴리오 만드는 걸 싫어하는 모두에게, 정말 원하는 일이 뭔지 생각해 보는 걸 추천한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한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일례로 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따뜻하고 밝은 이야기를 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