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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이 May 16. 2022

나성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1

Blue Valentine, Take this waltz

설레는 편지 잘 읽었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플로리다가 그리워지네. 그런 바다에 있을 오빠가 그려져서, 러시아에서 오빠의 풍경이 되었다는 그 연인들처럼, 하얗고 초록의 바다에 서 있을 풍경이 보인다.


기다림이 잘 익는 시간이 어느 정도일지 생각하다가 깨달은 게 있어. 나는 기다림에 약한 사람이라는 거야. 하고 싶은 거, 가지고 싶은 걸 잘 참지 못하는 나라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맞을지 혼자 생각하다 편지를 보내. 그 시간 동안 내 기다림은 잘 익었으니, 오빠도 오빠만의 기다림이 잘 익었을 때 답장을 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조금 긴 내용이 될 것 같아.


나는 저번 주 복잡한 한 주를 보냈어. 어느 저녁에 아빠랑 통화를 하다가 전에 만났던 사람 얘기를 하게 됐어. 나랑 만나는 내내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그 애를 엄청 싫어했거든. 내가 화가 나서 얘기를 하니까 아빠는 도리어 그 애의 편을 들더라고. 그러면서 내게 말하길, 그 애는 나랑 만나는 그 시간 동안 엄청 힘들었을 거라고 하더라.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전화를 끊고 생각을 해봤어.


우리의 일 년 반을 생각해보니 정말 그 애를 용서할 마음이 생기더라고. 밤늦게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연락을 했어. 너를 이해한다고 진심으로 너의 행복한 인생과 사랑을 바란다고, 홧김에 했던 말을 사과하겠다고 했어. 그리고 엄청 개운한 마음으로 일어났지.


출근하는 버스에서 내가 전날 보낸 글과 내가 힘들 때 혼자 썼던 글을 읽었어. 버스에서 내려서 기찻길을 걷는데 정말 드라마처럼 눈물이 펑펑 났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거리를 걸으며 많이 울었고, 왜 나는 내 마음을 챙겨주지 않았는지 후회가 되더라. 지금이라도 내 마음을 돌봐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며칠간 집에서, Mak에서 영화를 봤어. ‘Blue Valentine’이라는 영화를 처음 봤고, ‘Take this waltz’라는 영화를 다시 봤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싶지만 오빠도 봤으면 하는 영화들이니까 그건 생략할게. 보게 된다면 그 각각의 영화에서 내가 뽑은 버킷리스트가 뭔지 꼭 맞춰보길 바라. 확실한 건 두 영화를 보고 나면 오빠는 미셸 윌리엄스를 미워하고,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거야.


‘Blue Valentine’이랑 ‘Take this waltz’ 둘 다 운명적인 사랑의 시작과 그 사람들의 현재를 그린 영화야. 운명적인 만남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내용이지. ‘Take this waltz’를 처음 봤을 때, 난 안정적인 사랑과 운명적인 사랑 중에 단연 전자를 고르는 사람이었어. 첫 이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도 했고, 운명이라는 건 결국 현실에 풍화되고야 마는 것으로 생각했거든.


그날 우리 동화 같은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잖아. 그날 이후 나는 왜 동화 같은 사랑을 믿지 않으면서, 사랑과 관계를 그렇게 원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 저 영화들을 보면서도 생각했지.


‘우리 사랑일까요(A lot like love)’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어떨까? 영화에서는 둘의 사랑의 결실이 맺는 순간까지만 볼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어땠을까. 둘은 행복하게 살았을까. 그 둘도 결국엔 결혼 준비를 하고 집안일을 분담하고 연휴마다 서로의 가족을 챙기며 수도 없이 싸우지 않았을까. 나는 분명 그랬을거라고 생각해. 그치만 중요한건 여기야. 나는 그런 관계를 선망한다는 거야.


운명적인 만남은 결국 풍화되겠지만, 그 자리는 서로의 추억과 이해로 대체되고 그게 과연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그렇게 싸우며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가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는 게, 그런 단계에 도달한 사랑이 참 부러워. 그리고 난 그게 총체적인 ‘운명 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해. 오빠가 믿고 싶다는 동화 같은 사랑과는 조금 다르려나?


발리에 갔을 때 충격받았던 게 있어. 나는 항상 평범한 상황에 평범한 사람을 만나 미지근한 연애를 했었거든. 근데 발리에는 정말 많은 걸 포기하고 오로지 서로 함께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연인들이 많았어. 그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며, 나도 저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미팅으로 소개팅으로, 연애가 하고 싶어서 하는 연애 말고. 운명적인 감정과 충동에 이끌려서 내 모든 걸 포기하는 사랑. 그래서 지금의 나는 안정적인 사랑과 운명적인 사랑 중에 단연 후자를 고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발리에서의 여행이 사랑에 대한 내 가치관을 완전히 바꾼 거야.


이런저런 생각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이전 연애가 우리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그래서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게 맞음을 인정하기로 했어. 좋은 시간은 추억하고 나빴던 시간도 무언가 배우며 내 나름의 방식으로 추억하려고.


여전히 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냥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어.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많이 사랑해줄 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해볼 거고 또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낼 거야. 오빠와 몇 시간이고 걸었던 LA의 밤거리처럼 그런 운명적인 시간들이 또 돌아오겠지.


LA는 내가 잘 지키고 있을게. 언제 돌아와도 여전하도록.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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