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sther Jo May 24. 2022

4월의 책

미술관에 간 심리학

20대 초반, 현대 미술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이것도 ‘작품’이 될 수 있나?” "흠,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별거 아닌거 같은데... 이게 어떻게 작품으로서 인정을 받는거지?" 라는 건방을 떨었다. 나란 사람이 웃기지도 않다. 애초에 미술실력이란 쥐똥만큼도 없는, 사물 하나 드로잉을 해본 적도 없는 내가, 어떻게 저런 건방진 말을 내뱉을 수 있는가? 해보지도 않은 나의 영역 밖의 일을 저리 쉽게 평가절하 해버릴 수 있는가? 그렇다 나의 20대 초반은 어림으로 포장한 무지의 상태였다.

20대 중반, 뉴욕, 휴스턴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함께 여행을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현대 미술에 대한 나의 고민을 털어놨다. "언니, 저는 봐도 봐도, 현대 미술에서 얻어야 하는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에 대한, 그녀의 답은 그동안 묵혀왔던 나의 고민을 한방에 타파시켜주었다.

"음, 원래 여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틀도, 도안도, 주제도 없는 텅 빈 공간에, 무언가를 채운다는건 쉬운 일은 아닐꺼야.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자신의 메세지를 구축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고 창조적인 일 아닐까?"

벌써 4년 전 일화이다. 나는 이 날 이후로 미술관에 가는 것을 더욱 즐기고 있다. 그녀의 명쾌한 답변 덕분에, 그날 이후 미술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새로워졌다. 아니, 바라보는 모든 사물, 사람, 관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과 보낸 고작의 한 시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지 않는가!


https://eunbyeolesther.tistory.com/294?category=894083
  내가 미술관을 좋아하는 이유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그 어떤 분들이 계시다면, 꼭 이 비디오를 재생하시고 음악을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나도 모  eunbyeolesther.tistory.com


*
종종 이십대 초반의 나를 돌이켜보면, '제대로 알고 있는거 쥐뿔 하나 없으면서 뭐그리 아는체하고 살았을까' 싶다 ㅋㅋㅋ (물론 여전히 나는 20대이니... 십년쯤 지나면 이 글 역시 흑역사가 되어있지 않을까 예상을 해본다ㅋㅋㅋㅋ) 뭐 아무튼, 20대 후반에 오면서, 아는 사람이 더욱 겸손하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라는 옛 말씀들이 괜히 내려져온게 아니라는걸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아는' 사람, 조금 더 '채워진' 사람이 되는게 몇 년 전부터 지속되어온 나의 목표 중의 하나이다. 말을 아끼고, 생각을 단단하게 만드는 사람. 주관을 쌓아가다 의견이 있을 때 소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말이다.

*

작년, 여름, 앞서 언급한 친구와 함께 보스턴 여행을 다녀왔다. 보스턴 퀸시마켓을 가던 길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니, 이전에 알뜰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진애 박사님이 미켈란젤로의 스케치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신 장면을 봤어요. 저는 그 장면이 너무 멋있고 감동적인거에요. 미켈란젤로를 얼마나 사모했으면 그의 작품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고, 그 예술에 푹 잠길 수 있을까...이런 생각을 말이죠.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을 많이 느끼는 요즘이에요. 그래서 저도 더 많이 알고 싶어요. 제 분야인 음악도 그렇지만, 역사도 알고 싶고, 문화도 알고 싶고, 세계도 더 많이 느끼고 경험해보고 싶어요."

*

오늘의 글은 다음 몇가지 질문과 함께 마무리하고 싶다. 첫째, 무지와 오만으로 누군가를, 혹은 어떤 상황을 쉽게 판단하고 있지 않는가? 둘째, 조금 더 아는 사람, 채워진 사람이 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 셋째, 용감하게 많은 것에 도전하고 경험하고 있는 중인가? 이 글을 쓰며 상기한 세가지 질문을 오늘 뿐만이 아닌 앞으로도 계속 계속 되뇌이고 싶다. 책 한 권을 통해 좋은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었다.

*

이 책은 책의 제목에 걸맞게, 말그대로, 미술작품들을 통해 심리학을 알려주는 책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심리학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배경, 역사, 인물에 관한 일화, 그리고 각 작품으로부터 느낀 본인의 생각과 견해 그리고 감상까지 모든 내용을 충실히 담아냈다.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까지 하신 분인데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셨고 지식을 쌓으셨으면 하나도, 둘도 아닌 몇가지의 방대한 지식을 한 권에 압축시켜 담을 수 있는지 참 놀라웠다. 덕분에 예술의 감동은 기교를 통해 얻는게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얻어지는 것임을 다시 깨달은 시간이었다. 미술 지식을 얻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월의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