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와 최은영, 전태일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독서모임 책 두 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박완서), 『밝은 밤』(최은영)과 『전태일 평전』(조영래)을 읽었다. 공교롭게도 세 책 모두 음울한 시대를 다루고 있다. 한국전쟁이 배경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지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를 다룬 『밝은 밤』, 산업화 시기 암울한 노동 현실을 다룬 『전태일 평전』까지 모두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박완서는 어린 시절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면서 책을 마무리 짓는데, 그의 '증언할 책무'는 이후 낸 수많은 작품 곳곳에 드러나 있다. 특히 한국전쟁은 그가 평생 천착한 주제였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작가가 겪은 한국전쟁 경험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남과 북의 이념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피난민 시절의 일부터 미군 점령하에 겪은 민족의 수치심까지, 민족의 혼란과 수치심을 박완서는 개인의 혼란과 수치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역시나 뛰어난 묘사와 서술이 눈에 띄는 작품인데, 증언자라는 작가의 소명이자 자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밝은 밤』은 최은영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100여 년에 이르는 세월 속에서도 탄탄한 전개가 으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과 한국전쟁 시기에 일어난 일들이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디테일이 훌륭하고 핍진성도 뛰어난 작품이다. 어찌 그리 잘 썼을까.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황해도 출신인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고, 박경리,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에서 세밀한 묘사에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박완서 작가가 증언자로서 기록한 개인적 체험과 기억들이 다음 세대의 작가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세대를 넘어 기억이 전수되고 상상의 세계 속에서 펼쳐질 수 있는 건 문학이 가진 고유의 힘이 아닐까.
그리고 『전태일 평전』, 이 책의 운명은 참 기구하다. 1970년 전태일 사후 쓰였지만 유신정권 하에서 출판하기는 쉽지 않았다. 1978년,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일본어판으로 처음 빛을 본다. 그러던 것이 1983년,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란 이름으로 출판되고, 1991년 저자 조영래가 세상을 뜬 지 1년 만에 비로소 저자의 이름을 찾아 새로이 발간된다. 기구한 운명답게 담고 있는 내용도 심상찮다. 『전태일 평전』은 그 당시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 현장에 대한 르포이자, 한 노동자의 개인 수기이며 노동현실을 다룬 사회학 서적으로 그 시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노동 사각지대 평화시장의 참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의 삶이 기록되어 기억이 전수되지 않았더라면 오늘 내가 당당하고도 자연스럽게 노동기본권을 주장하며 살 수 있었을까. 빚진 마음이 살며시 올라왔다.
대체 '기억'이란 무엇일까. 『밝은 밤』에는 일제에 의해 징용되어 히로시마에서 일하다 원자폭탄을 경험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일본에서 돌아와서 줄곧 침묵을 지키다 죽기 전에야 "기억해주갔어?"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그날 일본에서 일어난 일을 증언한다. 『전태일 평전』에서 전태일은 분신자살을 기도한 후 병원에 실려가는데, 죽어가는 와중에 친구들을 불러 "내 말 분명히 듣고 잊지 말게.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고 당부한다.
두 주 간,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문득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앞 세대가 전해준 기억들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또 우리는 무슨 기억을 전해줄 수 있을까. 책이 넘쳐나는 시대, 누구나 쉽게 책을 내고 콘텐츠를 만들고 저장해 내는 요즈음 우린 기억될 만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모르겠으면 기억이라도 잘 하며 살자, 많은 것들에 홀리지 말고, 기억이라도 잘 하며 살자, 이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