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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XIDERMIED GENIUS Apr 30. 2021

질척이는 '앎'의 늪에서 허우적

영화 <곡성> 리뷰

대부분의 한국 영화에서 갈리는 '호불호' 는 주로 복선 같은 숨겨진 장치 따위에서 비롯된다.그것이 어떤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거나 일종의 문화적 폐쇄성을 띠고 있는 장치라면 더욱 그렇다. 막이 내린 후 무언가를 찾아낸 자와 그렇지 못한 이들의 괴리는, 영화를 '잘 본 사람'과 동시에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을 만들어낸다. 보물 찾기처럼, '찾아낸 이' 들은 약간의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평론가라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함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다. 또 한편으로 카오스를 기대했다. 이 잘난 사람들의 그 훌륭한 시각과 통찰력을, 우리가 가진 1차원적인 그것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내려 버릴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쉽게 말해서, 너무나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나머지 누가 어떤 말을 지껄이든지 다 신빙성을 얻어 버리는 카오스 같은 영화가 보고 싶었다.
 <곡성>은 우리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인식이라는 행위 자체를 짓밟아 버린다. 종구(곽도원 분)를 포함한 영화 안에서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좀비같은 존재와 그들이 본질적으로 다를 게 무엇일까? 하루살이나 나방처럼 그저 눈앞에 빛나는 것을 찾아 미친 듯 뛰어들어갈 뿐 '뭐시 중헌지' 그들은 막이 내릴 때까지 알지 못했다.
1.
감독은 영화 막바지에 답답해하던 나에게 '너도 똑같다' 라고 선언한다. 마치 어느 시인의 작품에서 북어들이 화자를 바라보며 하는 말 같다. 영화 초반부 무명이 종구에게 해가 질 무렵까지 돌을 던지는 장면을 보며 문득 요한복음 8장 7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는 대목이 떠올랐다. 무지한 인간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그녀는 결국 신과 같은 존재였다. 과연 우리 중 누가 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신의 경고를 무시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를, 성경도 성수도 아닌 낫 한 자루를 들고 악마를 찾아가는 어린 사제를, 그리고 과학에 의지해 악을 물리쳐보라는 무책임한 신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2.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로 예수나 마을의 수호신처럼 해석되던 무명의 존재가 좀 더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절대선' 을 상징하는 신적 존재로 나타나는 동시에 그녀는 '절대지'의 화신이다. 너무 서구적인 표현이라면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 나 '진리'라고 표현해도 괜찮겠다. 진리를 찾아 헤매는 자들에게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내밀지만, 우매한 인간은 의심에 빠져 손을 뿌리치며 무지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이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 무지한 인간일까. 진리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주지만 끝내 그것마저 삼켜버리는 의심이라는 존재일까. 우리에게 그저 손을 내밀 뿐, 무지의 늪에서 건져 올리지 않는 무능한 신 때문일까.

3.

영화에도 촉각을 느낄 수 있다면 <곡성> 은 굉장히 질척거리는 느낌이다. 보고 나니 상당히 불쾌하다. 내가 맹신했던 나의 감각과, 인식이라는 능력의 나체가 사실상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인지 여실히 드러나서일까. 영화는 어쨌든 그 자체로 카오스를 만들어냈다. 인간이 사고하는 가장 첫 발걸음부터 철저하게 무력화되는 무지와 혼돈의 공간이 조용하고 작은 시골 마을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나홍진 감독은 기독교인인데, 이 영화를 마무리할 무렵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악마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의 못자국을 지니며 예수의 말을 하고, 선량한 이들이 끝내 피해자가 되는 세상,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천천히 죽어간다면 도대체 무엇을 알아야 할까. 죽는 날까지 우리 눈 앞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신이 직접 그것을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모든 필사의 존재가 뱉은 '안다' 라는 말의 그늘에는 늘 불완전과 의심의 싹이 자라기 마련이다. <곡성>을 보고 나서도 이 영화에 대해 "안다" 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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