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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Sep 21. 2021

나의 가을은

예고도 없이 가을을 버스 안에서 맞게 되었다.

여름내 가로수 가지에 매달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을 주던 플라타너스 잎이 사람 얼굴을 가릴 만한 크기의 낙엽 한 장이 되어 버스에 무임승차를 하였다.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의 발에 치여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모양이 찌그러진다.       

    

살결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속에서 향긋한 국화향이 묻어나고 갈대의 산들 거림처럼 간지러움을 느낀다. 청명하고 푸른 하늘 아래서 애써 단장한 머리 풀어헤치고 가을바람 속으로 폴폴 날리고 싶어 진다. 산들거리는 바람 속으로 햇살이 눈 흘기듯이 째려보지만 애써 피하고 싶지만은 않다. 살짝 실눈 뜨고 반긴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무심코 바라보다 정류소 광고판에 "쉼"이란 글자가 눈에 띈다.  


쉬어가는 길, 쉼표, 쉼.. 

잠시 휴식을 취하는 단어에는 편안함이 깃들어 있다. 하루가 빠르게 숨 돌릴 틈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지난 잊지 못할 것을 잊으려 삶의 시계추를 빠르게 돌려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쉬지 않고 숨을 몰아 단숨에 뛰는 사람들은 한 번쯤 멈춰 서서 긴 호흡을 할 필요가 있다. 잠깐의 쉼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자. 그리고 다시 뛰어갈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기도 하고 물 한 모금 메마른 목에 축이기도 하자. 

         

땀으로 범벅이 되고 고되고 힘든 일상에서 작은 휴식을 취하고도 싶다. 잠시 짬을 내어 생각만으로도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오고도 싶다. 경비도 전혀 들지 않고 차를 타고 가면서 느끼는 울렁증과 피곤함도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여행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도 없다. 그저 눈을 감고 가고 싶은 곳을 상상만 하면 되는 것이다.  


혼자 가면 지루하니 이야기 장단을 맞춰 줄 친구와 동행하면 일러 무삼하겠는가. 이번 가을은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아닌 산에서 가을을 느끼고 싶다. 바다에는 없고 산에만 있는 그늘을 찾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쉬어가는 길이 남보다 늦추어가는 것이 아닌 움츠렸다 다시 펴는 개구리처럼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도약이 된다. 가을 속으로 깊게 빠져들어가면 갈수록 가을이 저 멀리 재빠르게 도망가고 반기지 않은 겨울이 찾아온다. 


나의 가을은 안단테로 왔으면 한다.




<마음 한 다발> 이 공간은 제가 20년 전에 썼던 글을 다듬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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