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얼굴은 자세히 보질 못했다. 그 놈의 얼굴에 수염이 있는지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 놈은 약삭빠르고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민첩성과 빠른 지각력을 가지고 있다. 그 놈의 등장은 항상 반갑지 않다. 머리끝이 쭈뼛서는 첫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놈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지만, 왠지 그 놈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아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 놈이라고 말해야 명확할 거 같다.
그 놈들을 진저리치게 본 것은 20대때였다. 1년간 부천의 반지하에서 살았다. 습하고 햇살이 잘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그 놈들을 자주 봤다. 어쩌면 그 놈들의 안락한 거주지에 내가 세들어 살았는지 모른다. 이사를 가던 날, 가구를 들어낸 텅 빈 방안엔 1년간 그 놈들을 처치하려는 대응책은 처절했다. 체납을 미뤄 가구에 빨간딱지가 더덕 더덕 부쳐있듯이, 사방의 벽면에 검은 딱지들의 흉한 모습을 보며 그 놈들과는 마음 속으로 반가운 안녕을 고하였다.
잠시 몇년간 그 놈들을 잊고 살다가 엄마집에서 그 놈들을 보게 되었다. 오래된 건물의 2층 양옥집에 가끔 그 놈들이 나타났다. 그 놈들은 습한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살았고, 기분이 내키면 마루까지 엉금엉금 마실을 가곤 한다. 한 번은 문을 닫고 자는 방안에서 그 놈을 봤다. 캄캄한 밤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떠 보니, 한 놈이 바로 내 옆에서 동침을 하고 있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나를 놀라게 하는 끈질긴 습성을 지닌 그 놈은 시간이 흘러도 나를 따라다녔다. 아무래도 나를 놀래키는 일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외국 놈들까지 합세 할 때엔 두 손 두 발을 다 든 심정이다. 그 후 몇년 지나, 중국심천에 잠깐 들렀ㄷ다. 한낮의 기온이 영상 38도, 습도 80이 넘어서는 불볕 더위였다. 저녁 길가엔 더위를 시키려 나오는 그 놈들이 종종 보였다.
한 번은 버스에 올라 창가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일이다. 예상치도 못하게 무인승차한 그 놈이 내 옆을 유유히 지나갔을 때, 경악을 하며 자리를 옮긴 적이 있었다. 그 때 따가운 중국인들의 시선으로 나만 우스운 꼴이 되었다. 그 후로는 버스를 탈 때면 어느 정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중국의 놈들은 한국의 그 놈들과 다르다. 날개가 있어 휘리릭 날아다니는 놈도 있다. 덩치가 커서 한국의 그 놈들을 얍잡아 볼지 모른다. 그 놈의 활동영역은 참으로 다양하다. 어디선가 날라와 베란다의 하얀 유리창문을 들이받아 객사하는 시력이 좋지 않은 놈도 있고, 냉장고 안에서 하루 밤을 지새고 아침에 내가 문을 열자마자 내게 방긋 인사하는 불청객도 있었으며, 가스렌지 위에 편히 쉬고 있는 굶주린 놈도 있으며 벽주위를 선회하며 다니다 놀래키게 만드는 공포스런 놈도 있었다. 중국의 깨끗치 못한 환경탓에 그 놈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제는 그놈들과 대면하는 일은 갖고 싶지않다. 그 놈이 나타날때 무섭고 표독스런 표정을 연습해서 '짠'하고 보여주었더니, 그 놈들이 먼저 놀라서 도망갔다. 제발 그러길 바랬던적이 있었다.
요즘들어 그 놈의 행방은 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