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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Mar 17. 2022

[2022-2] 행운을 빌어 줘

[문화일기 2022] 2월의 문화소비기록

뭐라도 틀어놓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것 같던, 그리고 사실 아직까지도 그런 삼월에 돌이켜보는 이월의 문화소비기록


이월의 영상 콘텐츠 감상 달력


이월의 드라마

리갈하이 시즌 1 (2012) - 인간은 신이 아니다

정의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적인 신입 변호사 마유즈미와 오로지 돈과 무패라는 기록을 지키고자 하는 변호사 코미야도의 한편 같은 한편 아닌 법정물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반부의 마을 집단 소송 사건을 제외하면 한 에피소드당 한 사건이 진행되며 진행 속도가 빨라서 가볍고 재밌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이겨' 하며 보다가 '이걸 이기네' 하고 보게 되는 재미가 있다.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정의라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노력하는 마유즈미의 입장이 이해되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 드라마를 볼 수록 코미야도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변호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의뢰인의 편에 서서 승소를 할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는 돈미새인 코미야도의 쪽으로 말이다. 언변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전에 '변호사는 신이 아니다.'라는 코미야도의 말에 마음이 갔다. 모든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 우린 모두 누군가가 보여주기로 한 조각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사는데, 이런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선과 악을, 정답과 오답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코미야도는 마유즈미를 보고 '아침 드라마'같은 녀석이라며 비웃지만, 세상은 마유즈미 같은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이라도 밝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마유즈미처럼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를 고민하며 정의를 추구해나가기보다는 코미야도 처럼 주어진 정보 속에서 큰 생각 없이 간단한 신념만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어.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아역 배우가 어머니를 상대로 제기한 친권 상실 소송이었다. 변호사였던 아버지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게(정확히 말하자면 정서적 학대) 길러져 연을 끊고 살던 코미야도가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대입하며 아역 배우와 함께 어머니를 상대로 친권 상실 소송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는데,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서 그랬다는 말로 아이에게 가해진 정서적 학대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를 보여준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한다. 


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 (2021)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회사에서 SNS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마시바(왼쪽)가 셰어하우스에 들어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특히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슌(오른쪽)을 만나 사랑과 성장을 하는 드라마다. 여주인공인 마시바가 10만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인플루언서로 나오기 때문에, SNS 마케팅에 흥미가 있다면 재밌을 법한 내용들이 조금씩 나온다. 알람을 설정해서 게시글을 업로드하는 내용이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사용하는 장면이라든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악플을 받는다거나 하는 등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장면이나 스토리가 재밌었다.


특유의 감각으로 인테리어 아이템, 소품샵 사업을 운영하고 키운 사장님을 동경하여 회사에 입사했고, 사장님을 짝사랑했던 터라 마시바-사장님-슌 사이에 삼각관계처럼 스토리가 진행되기도 한다. 후반부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마시바와 이루어지는 사람이 누구일지 답답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연애를 제외하고도 서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하우스 메이트들의 이야기가 재밌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특히 슌과 마시바 사이의 관계성이 좋았다. 레스토랑 경영을 실패했던 것에 큰 죄책감을 가지고 무언가를 새롭게 열정적으로 도전하지 않으려는 슌에게 마시바가 용기를 주고, 악플과 이런저런 일이 겹쳐 마시바가 모든 걸 그만두고 쉬려고 하자 슌이 도망치는 거 아니냐고 잡아주는 등 서로가 서로를 잡아주고 지탱해주며 성장하는 모습이 좋았다. 

  

괴물사변 (2021) - 얘들아 행복해라

괴물들이 벌인 사건을 조사하러 다니는 초딩 조사단 이야기 근데 이제 보호자 너구리 아저씨를 곁들인.

짧아서 금방금방 볼 수 있었다. 특히 주인공이 머리가 잘리지 않는 이상 몸이 계속 재생하고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터라 전투신이나 위기도 시원하게 볼 수 있었다. 부모님도 친구도 없이 혼자였던 카바네가 친구들을 사귀면서 그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데, 친구들도 각자 다 사연이 있다. 얘들아 행복해라.. 근데 애니메이션이라 그런지 등장인물들이 너무 어린 설정이라(13~14세) 몰입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소년심판 (2022) - 소년범을 혐오한다는 말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

심은석의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이 대사는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소년범을 혐오한다.

2. 소년 범죄자를 만드는 세상을 혐오한다.

3. 더 큰 범죄를 저지르게 할 수 있는 소년법이라는 체계를 혐오한다.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심은석의 혐오는 1번의 혐오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보다 보니 진심으로 소년범 아이들이 죄를 뉘우치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 말미에 다시 등장하는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대사를 들었을 때는 2번, 3번의 혐오를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기르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거꾸로 생각하면, 한 아이에게 한 마을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는 은석의 대사도 기억에 남고, 가정에서 사회에서 무서움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사람을 해하면 어떻게 되는지 법이 그 무서움을 가르쳐주어야 하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소년 교화'의 목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차태주의 말도 이해하지만, 자칫하다가는 '교화'의 기회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보다 가벼운 처분에 다시 한번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소년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 무게감을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소년범을 혐오하는 소년법정 판사'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홍보를 돌았지만, 정작 이 드라마를 보니 우리 회가 소년범 개인만을 비난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부장판사의 대사도 기억이 나고. 여기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다 체적인 캐터였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한 가지 문제를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었다. 은석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판결이 신임 부장판사에게는 자신만의 신념과 기준에 의거한 판결이었던 것도 그렇고. 


법이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입해서 금방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1시간 조금 넘는 분량으로 10화까지 있는데, 보다 보면 끊지 못하고 끝까지 보게 된다. 





이월의 책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6년 만에 다시 읽은 <계속해보겠습니다>

내 취향을 나무에 빗대서 설명할 수 있다면, 그 뿌리에는 아마도 황정은의 글이 있을 것이며 그 근원은 바로 이 책일 것이다. 끊기질 않고 이어지는 듯한 느낌의 황정은의 문체가 매력적이었고, 이 이야기 자체가 강렬한 사랑이야기로 느껴졌다. 특히 나기 부분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대사를 외울 정도로 다시 읽기도 했다. 그동안의 시간만큼 나도 달라져서일까? 오랜만에 읽은 이 책은 사랑이야기보다는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나기와 애자와 소라와 나나의 이야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읽었을 때는 주목하지 않았던 캐릭터나 대사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애자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다. 나기의 어머니의 말처럼, 사랑하는 남편을 하루아침에 산재로 게 된 애자는 안쓰럽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고통만을 생각하는 동안 부모의 역할을 완전히 잊어버린 채 소라와 나나라는 두 아이를 방치한 점은 용서할 수는 없다. 방치뿐만 아니라 소설 중후반부에 나나에게 왜 너만 행복하냐고 했을 때는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기 어머니 부분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는데, 황정은의 최신작인 <연년세세> 속 이순일의 과거 서사와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인물이지만, 그래도 왠지 나기 어머니의 근황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라 좋았다.


p.9
너무 소중하게 너무 열심히 들어서 기억에 남지 않고 몸이 되어버린 거야.
몸?
들었다기보다는 먹은 거야. 기억에도 남지 않을 정도로 남김없이 먹고 마셔서, 일체가 되어버린 거야.
p.142
나는 내 고통에 관해서만 맹렬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저기 분명한 고통에 관한 것은 생각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거야말로 나나가 가장 혐오하는 애자와 가장 가까운 마음이라는 것을. 그 옛날, 나기 오라버니가 나나의 뺨을 때려 가르쳐준 것을 완전하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은 그렇게 괴물이 되는 거야.
잊지 마.
그렇게 뼈저리게 들은 당부를 매순간, 자연스럽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이월의 노래

원필 - 행운을 빌어 줘

앞으로 총 몇 번의 몇 번의 희망과
그리고 또 몇 번의 몇 번의 절망과
차가운 웃음 혹은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행운을 빌어 줘 
내 앞길에 행복을 빌어 줘

일단 가사에 사용된 표현법이 너무 좋다.

차가운 웃음, 기쁨의 눈물 같은 반어적인 표현을 비슷한 위치에 배치해둔 게 좋았다. 시를 읽을 때의 운율이 생각나던 배치라서 좋았고, 가사가 마냥 밝고 행복한 에너지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좋았다. 절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아무쪼록' 행운과 행복을 빌어달라는 말이 너무 좋았다. 현실적인 행복 노래 같아서.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절망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현실 속에서 마냥 행복한 일만 있길 바라 달라고 말하지 않고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행운과 행복을 빌어 달라고 당차게 말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 좋다. 힘든 일을 겪더라도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그걸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느낌에 이 노래를 더 아끼게 되는 것 같다. 김원필씨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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