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라는 숫자와 낯가리던 일월
여전히 2022는 현재가 아닌 근미래 같지만, 그래도 조금은 친해진 이월에 일월의 문화소비기록을 풀어봅니다.
일월의 영화
십개월의 미래(2020)- 이게 맞나의 연속
숙취가 가시지 않는다며 약국에 갔던 미래는 약사의 말을 듣고 혹시나 싶어 임신테스트기를 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임신. 미래는 그럴 리가 없다며 자신이 마리아 냐며 부정하지만, 십 수개의 임테기 결과와 산부인과 원장님의 진단은 임신을 가리킨다.
계획에도 없던, 짐작조차 못한 임신으로 인해 미래는 부정-부정-그리고 부정을 겪게 된다. 복잡한 머리를 어쩌지 못하다가 남자 친구에게 임신을 알리자, 잘 풀리지 않던 일에 다운되어 있던 남자 친구는 미래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며 매우 좋아한다. 아이가 자기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 같다며 말이다.
미래는 그 모습을 보고도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남자 친구의 연락을 피하며 아이를 낳아야 하는 명분과 낳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으며 고민한다. 답을 찾지 못하던 날이 계속되던 중, 남자 친구가 미래의 본가에 찾아가고 연락을 받고 본가에 간 미래는 결혼 얘기를 임신 얘기로 오해하고 "임신한 건 난데 왜 당신들이 결정하냐"며 화를 낸다.
그 후 '낳지 않을 명분'이 없다는 판단 하에 여전히 잘 모르겠고 무섭고 두렵지만 남자 친구와 결혼 준비도 시작하는데, 그동안 몸을 갈아 넣었던 회사는 드디어 투자를 받기 시작한다. 그것도 상하이로. 상하이에 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미래는 남자 친구에게 이 얘기를 꺼내고 남자 친구는 나는 그럼 집에서 애만 보라는 말이냐며 이기적인 거 아니며 화를 낸다.
그 사이 자기와 똑같은 아이가 이 세상에 남겨졌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았던 선배도 육아와 회사일 사이에 지쳐 망한 것 같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떤 것이 답인지, 여전히 모르겠고 불안하기만 한 미래에게 출산 예정일은 점점 다가온다.
기억의 남는 대사는 중절 수술을 상담해주던 코디의 "이건 진짜 불법이세요. 저희 그런 곳 아니에요."였다. 초반에 중절 상담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주기가 지날 대로 지난 미래에게 이건 진짜 불법이라며 범죄자 취급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카오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카오스(태명)를 만날 준비를 해가던 미래는 참 대단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
조인성을 좋아하세요(2017) -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물음표에서 시작해 느낌표로 끝난다는 왓챠 평에 십분 공감.
독립(비상업) 영화감독 가영은 차차기작 주연으로 조인성을 생각하고, 아직 시나리오도 뭐도 없지만 조인성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진짜 조인성이 연락을 전해 듣고 가영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상영시간이 19분이고 가영 감독만 나오기 때문에 브이로그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초반에 조인성과 고현정을 가볍게 언급하던 부분은 별생각 없이 연예인들의 가십을 언급하는 것 같아 무례하게 보였는데, 후반에 조인성과 통화하면서 살짝 고장 난 가영 감독의 모습을 보니 연예인이란 존재가 실제로 우리 주위에 살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는 연예인이기에 아무 말이나 쉽게 할 수 있었구나 싶었다.
전화음으로만 출연한 조인성의 목소리와 젠틀함에 나도 그만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라고 할 뻔했다.
감시자들(2013) - 소년미의 한효주
범죄 설계자 정우성과 그를 쫓는 경찰 감시반의 이야기.
한번 본 건 모두 기억하는 한효주가 감시반 신입으로 들어오면서 정우성을 좇는 작전에 합류한다. 시원시원하게 스토리가 진행돼서 킬링타임용으로 보기 좋았다.
다만, 정우성을 쫓는 게 주요 스토리이고 사실상 이게 다라서 살짝 아쉬운 면이 있었다. 그래도 가볍게 보기 좋았다. 또 한효주 캐릭터가 초반에는 사연 있는 무거운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첫날 실수도 그렇고 자기가 현장 체질인 것 같다며 활짝 웃는 장면이라든지 나중에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장면 등이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신입'의 인간적인 모습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더 좋았다.
그리고 짧은 머리의 한효주가 너무 어리고 잘생겨서 보면서 소년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뭐라 대체할 수 없이 '소년미' 그 자체가. 캡처가 안 되는 게 아쉬웠다.
일월의 드라마
최애(2021) - 누군가의 최애
작년 겨울부터 함께해 올해의 첫 달에 마무리한 <최애>.
드라마를 챙겨본 게 진짜 오래전 일인 내가 오랜만에 매주 한 회씩 왓챠에 공개되는 걸 챙겨봤다.
주요 스토리는 15년 전 살인사건의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 세월 동안 피해자를 찾아다녔던 피해자의 아버지도 살해된 모습으로 발견되면서 두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범죄 수사만 있는 것은 아니고, 러브 서스펜스라는 장르답게 15년 전의 일과 현재 달라진 캐릭터들의 서사와 모습이 교차되면서 각자의 '최애'에 대한 사연이 풀리기도 한다. 절절한 사랑이야기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15년 전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약물을 먹여 성폭행을 저지르던 가해자였다는 점, 피해자의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 세월 동안 사건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아들 봤지 않냐고 집착하며 찾아다녔던 점 등 일반적인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었다는 게 신선했다.
처음에는 리오가 너무나도 범인 같았는데 생각보다 아니었다는 게 빨리 밝혀지고 나서 마지막 범인까지 보고 나니 김이 살짝 샌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드라마 제목처럼 각자의 최애에 관한 이야기를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결국엔 사랑 때문에.
에밀리 파리에 가다 1(2020) - you live to work, we work to live
타의적으로 막혀버린 해외여행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준 드라마. 이미 너무 유명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얼마 전 인수한 파리의 회사에 상사 대신 발령이 나게 된 에밀리는 꿈과 희망을 안고 파리에 도착한다. 그렇지만 에밀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프랑스어는 어렵고 사람들은 더욱 어렵다. 그래도 아름다운 파리에 온 이상 일과 삶을 사랑하는 에밀리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일단 에밀리의 패션 보는 재미가 컸고,
프랑스 문화와 파리의 모습을 접할 수 있어서 여행 간 기분이 들기도 했고 좋았다. 특히 프랑스인 직원인 뤼크가 에밀리에게 프랑스인과 미국인의 일에 대한 관점 차이를 얘기하던 대화가 인상 깊었다.
"You live to work, we work to live."
당신들은 일하기 위해 살지만,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해.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일이 재밌고 중요한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요즘 계속 깨닫고 있기 때문에서인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 일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나의 삶에서 일의 비중이 커지는 걸 원치 않고, 일이 일상의 전반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경계한다. 일에 돈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을 잊지 말아야지.
일월의 책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김영민)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또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것과 관련한 저자의 생각이 드러난 글이다. 저자가 즐겨 본 영화와 드라마를 언급하며 정치와 인간의 삶에 대해 설명하기도 해서 이런 류의 책이 처음인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깊게 들어가는 편은 아니라서 인간 존재의 의의와 관련된 고찰을 읽고자 했던 나 같은 사람은 살짝 아쉬울 수 있을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발췌
p.262-3
이곳은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할 자신이 없기에 타인을 더 과도하게 비난하는 세계, 모두가 마음에 죽창 하나쯤은 지닌 가해자면서 피해자연(然)하는 세계, 혐오를 연료 삼아 상대의 의견에 잔혹한 댓글을 다는 세계, 모두가 살아 남기 위해 혈안이 된 나머지 점점 저열해지고 있다는 감각마저 마비되는 세계, 당장 피를 흘리지는 않더라도 사실상 내전 중인 세계다.
p. 253-4
인간은 신이 아니고 세상은 천국이 아니다. 세상은 문제투성이고, 삶은 온전하지 않다. 당연하고 완전한 것은 없다. 그러니 세상을 문제와 답으로 재구성해볼 수있어야한다. 물어야 한다. 이 사태가 문제라면 답은 무엇인가? 이 사태가 답이라면 문제는 무엇인가? 그래야 상황을 이해하고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일월의 노래
바람이 될게 - 소마
링크에 꼭 접속해 주세요.
보컬톤과 멜로디가 너무 좋고 그게 어울러진 노래는 더더욱 좋다. 짙은 목소리인데 마냥 두껍지 않고 멜로디도 그저 잔잔하지만은 않아서 하루 종일 듣고 싶은 노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