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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Mar 25. 2024

그녀의  결단

  붉은 동백이 활짝 피었대요~같이 가요.


  일요일 이른 아침, 그녀에게 톡을 했다. 분명 일어나 있을 것이니, 당일 연락이지만 준비할 시간은 줘야 했다. 답을 기다리긴 하지만, 분명 동의하고 나설 것을 염두해 두고 점심을 뭐로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나들이를 좋아하는 그녀 부부와의 길든 짧든 여행 인연이 시작된 지도 어느 새 3년이 되어 간다.


  20대 멋 모르고 한 결혼과 고달프고 길었던 육아 시간들, 소설가로 성공해 보이겠다는, 무심한 남편 대신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꾸려 가느라 25 년을 그저 훌쩍 보내고서야 이제 다소 안정을 찾았다는 그녀. 요즘처럼 나들이로 멋진 경치며 지역 향토 음식 먹는 시간들이  행복하다고 했다.

  

 여행 중에 보이는 그녀 부부는 투닥거리긴 해도 오랜 부부의 안정감과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었다. 항상 눈으로 남편을 좇고 있기에 음식이라도 흘리면 바로 휴지로 닦아주고, 잘 먹는 반찬은 그릇에 덜어주며 살뜰히 내조했다. 그런 그녀의 행위가 오랜 습관이자 인성에 따른 것인지, 사랑이든 정이든 감정의 결과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 오랜 세월 함께하며 켜켜이 쌓인 서로에게 익숙한, 닮은 모습을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답이 없다. 남편도 답이 없다. 분명 읽었으나, 답변이 없다. 별거 아닌 일상도 자주 공유하고, 갓 퇴고한 글의 고견을 바란다며 작가다운 글도 올리던 그녀의 남편조차 나들이 제안에 답이 없다는 것은 둘 사이에 탈이 났음을 반증한다. 단톡의 읽씹을 다시 확인하고 개인톡으로 묻는다.


꽃구경은 가고 싶은데,

000하고 같이 가고싶진 않아요.


 정확히 남편 이름을 언급했다. 같이 가고싶지 않다는 그 말이 아프게 전달되었다. 문자로 전후 사정이 다 전달되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다친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결국 그간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일단 그냥 두 사람이 해결하도록 두어야 할지, 그랬다간 결코 해결되지 않고 악화될 뿐일 거라는 염려 사이에서 우리는 잠시 고민했다.


 부부 사이에도 간격은 있어야 하고, 부부의 일은 남이 나설 수 없는 묘한 기류가 있으니, 두 사람이 해결할 시간을 주자는 게 내 의견이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그녀의 남편이 따로 전화해서 꼭 같이 보자는 부탁을 했더라며 기어이 우리는 포근한 공기에도 녹지 못하는 냉기 서린 꽃구경에 나섰다.


 길지 않은 이동이었기에 망정이지, 차 안의 그 미묘한 냉기를 견디는 것은 원치 않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애써 모르는 척 아재개그를 해 보기도 하고 평소보다 더 웃어도 보고, 참 어색했다. 그녀는 우선 우리와의 우정으로 나왔는지는 모르나 시종일관 차창 바깥에 시선을 고정하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뒷자리에서 이것저것 챙겨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기도 하는 그녀의 남편의 안쓰런 노력이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소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표면화하여 터지는 것은 사소한 말 몇 마디이기도 하다. 상충하는 그 순간 바로바로 내뱉으며 폭발하는 이도 있으나, 차곡차곡 마음 속에 앙금처럼 쌓아두다가 한 순간에 터뜨리는 이도 있다. 어느 경우라도 계기가 되는 것은 정리되지 않은 그 순간의 말 실수이기도 하다. 사건의 본질이 원인일 것이나, 이를 적절히 전달하는 능력은 누구나 가질 수 없다. 결국 전달의 미숙함이 묻은 몇 단어가 서로 더욱 화를 부추기게 되고 골은 깊어진다.

 

 그녀의 남편은 바로바로 화를 풀어버리는 편이라면, 그녀는 속에 쌓아두는 편이었다. 겉으로는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참는 순한 아내이고, 감내하는 착한 아내였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세월 속에서 직업인으로 살아내는 동안 그녀도 제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익혔을 것이고, 누구보다 남편에게 제 목소리 내어야 함을 알았다. 가장 큰 용기는 아이들이 면전에서 부당함을 토로하며, 더이상 아버지과 소통하려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옳지 않음을 지금처럼 묵과해서는 더이상 자식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모성인지 그녀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갈수록 언성은 높아졌다.


 평생을 동반자로 곁을 지키기 위해선 결코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할 수 없다. 희생에는 원하지 않으나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전제도 포함된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상호적인 보상과 이해가 없이는 그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 결국 누르고 눌린 곳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 터지게 마련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은 인간의 나약한 몸만은 아니다. 더욱 나약한 마음은 더더욱 드러나지 않기에 잘 돌보아야 한다.


  이렇게는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요. 본인 원하는 대로만 살려거든 따로 살자고 얘기했어요. 감정적으로 우리더러 나가라 하는데, 제대로 정리하려거든 내가 있어야 해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저이가 뭘 정리하겠어요.


 뱉어낸 언어는 다시 회수가 불가능하다. 그도, 그녀도 언어화되어 버린 사태의 결과물에 이제 책임을 져야 한다. 누구보다 그는 사태가 이렇게 악화될 지 몰랐을 것이고, 그녀가 낯설었다.


  내가 잘못했소. 진짜 앞으로는 잘 할게. 애들한테도 미안하고. 당신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닌 거 알잖아.


  결국 그날은 두 사람의 어색한 기류를 풀기 위해 에너지를 더 쏟아야 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니, 기회를 주자라는 말, 이번에 큰 교훈을 얻었을 거라는 말, 부부 사이라도 당연한 배려는 없다는 말 등등 많은 말들을 전달했으나 진심으로 가슴에 가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결단을 말로 풀어 낸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 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날 보여준 그녀는 또다시 예전처럼 남편의 엉성한 실수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었다. 결단을 내렸다한들 하루아침 돌아서는 매정함을 지니지는 못한 그녀였으나, 남편에게 진심이 닿았기를 바랐다.


  이번에는 화해의 타이밍이 운좋게 맞았는지 모르나, 다음에도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우리네 삶이 결국 비켜간 타이밍으로 파국을 맞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그 옛날의 애틋한 감정들은 깎이고 깎여 모래처럼 잘아진다. 그러나 또 새로이 퇴적한 감정들도 쌓여 새로은 지형을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함께한 세월로 그려낸 그들의 그림을 다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부디 졸작으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까지의 동행이 행복을 주었듯이 좀더 이어지기를 바라며 꽃샘추위마냥 변덕스런 꽃놀이를 마무리했다. 굳은 가지에 연한 초록잎을 튀우고, 붉은 꽃을 피우는 봄바람은 우리들 가슴에도 절실히 필요했다.


#부부 #부부갈등 #결단 #상처 #회복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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